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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43] 바람 피하는 항구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9.06.21. 03:12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하는 우리 예전 가요가 있다. 1954년 나온 ‘홍콩(香港) 아가씨’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홍콩을 그렸다. 홍콩의 역사·문화적 지칭은 ‘바람 피하는 항구’다. 중국인들은 피풍당(避風塘)으로 적는다.

그곳은 본래 중국 대륙에서 빠져나온 이민자들의 도피처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중국 건국 뒤의 문화대혁명 등 극심한 혼란기에 대륙을 탈출한 사람들이 모여든 사회였다. 따라서 중국 현대사에 번졌던 여러 얼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초기 이민자들의 삶은 보통 바다를 떠나기 힘들었다. 형편이 여의치가 않아 방파제 안의 선상(船上)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배들이 모여 이룬 독특한 정경(情景)을 '피풍당'으로 적었다. 지금도 홍콩을 상징하는 요리에는 이 이름이 붙는다.

'바람 피하는 항구'의 이미지로 홍콩은 지금까지 독특한 위상을 이어왔다. 150여년에 걸친 영국 식민지로서의 설움도 간직했지만, 개방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환경이 돋보였다. 공산당이 드리운 '죽()의 장막' 너머로 신선한 자유의 공기를 불어넣는 곳이기도 했다. 1997년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뒤에도 홍콩의 자유는 이어졌다. 이전까지의 제도를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전향적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범죄인을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법 조항 때문에 크게 출렁였다. 대륙에 불리한 발언조차 못하게 하는 내용이라서 홍콩인들의 반발이 심하다.

공산당이 우선은 한 걸음 물러섰다. 법안 심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러나 대륙에서 불어대는 바람은 홍콩에 남아 있는 자유의 숨결을 마냥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듯하다. ‘피풍당’에 몰려들었던 배들은 더 튼튼한 제방을 쌓아 거센 바람에 맞설까, 아니면 그곳을 떠날까. 홍콩이 이래저래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0/20190620037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