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입력 2023.09.22. 03:00
주로 옛날 노래를 듣는다. 나는 요즘 노래를 들으려 노력하는 중년 남자다. 뉴진스는 매일 한 곡 듣는다. 팝도 열심히 듣는다. 미국 음악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인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노래 ‘Vampire’는 정말이지 오랜만의 명곡이다. 몇 주 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자크 브라이언의 ‘I Remember Everything’은 장년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조니 캐시 이후 최고로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컨트리 가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뭐든지 열심히 업데이트하려 애쓴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르신을 비웃던 세대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비욘세와 리애나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르신이 된다.
그래도 결국 옛날 노래로 돌아간다. 내가 사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목록은 1980년대 노래로 가득하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도 청각은 가장 보수적이다. 영화나 문학은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영원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 보며 사는 사람은 없다. 영원히 ‘호밀밭의 파수꾼’만 읽으며 사는 사람도 없다. 음악은 다르다. 이상할 정도로 우리는 젊은 시절, 특히 10대와 20대 초반에 들은 음악에 집착한다. 여러 과학적 가설에 따르면 음악은 인간의 성장과 가장 단단히 결합되는 예술이다. 인격이 형성되던 시절 즐겨 듣던 음악은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쉽게 열광하고 쉽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던 별걱정 없이 행복하던 시절 말이다. 음악 취향이란 참으로 회고적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필 콜린스를 들었다.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니 필 콜린스 목소리가 당겼다. 그가 1980년대 발표한 사랑 노래들은 여전히 그렇게 심금을 울린다. 필 콜린스는 당대 최고 팝스타 중 한 명이었다. 1980년대 셋째로 음반을 많이 팔아치운 가수였다. 빌보드 1위 노래만 7곡이 나왔다. 그런데 그의 뮤직비디오를 유튜브로 오랜만에 보다가 조금 낯설어졌다. 머리도 벗겨지고 배도 나오고 키도 짤막한 ‘아재’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는 어떻게 봐도 팝스타 외모가 아니다. 팝스타 외모가 아닌 남자가 여성들의 열광적 비명을 들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1980년대 내가 좋아했던 많은 팝스타가 그랬다. 필 콜린스와 같은 밴드 ‘제네시스’ 출신 피터 가브리엘도 미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인생의 밴드라 할만한 ‘록시뮤직’ 출신 브라이언 페리는 키만 크지 상당한 추남에 가까웠다. 라이오넬 리치는 또 어떤가. 그는 중안부가 지나치게 긴 얼굴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에 따르면 중안부가 긴 얼굴은 칼을 아무리 대도 답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부르는 데 최적화된 평범한 아재들이었다. 그런 가수는 거의 사라졌다. 2020년대에 비교적 못생긴 외모로 압도적 팝스타가 된 사람은 에드 시런뿐이다. 에드 시런의 열광적 팬이라면 이 문장에 조금 화가 났을 수도 있겠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에 관한 한국 기사들을 찾아보니 “노래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청년이었을 것이다”라거나 “겉모습으로만 본 에드 시런은 참 답이 없는 아티스트”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에드 시런의 못생김은 2020년대 팝 시장에서 오히려 독창적인 무기다. 그런 얼굴로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율배반적으로 귀엽게 느껴지는 덕이다. 1980년대였다면 그는 그냥 많은 팝스타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많은 팝스타가 이율배반적이었다. 라이오넬 리치가 중안부가 지나치게 긴 얼굴로 지나치게 감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Hello, is it me you’re looking for?(헬로, 당신이 찾고 있는 게 바로 나인가요?)”라고 노래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시절이 아니었다. 겨우 30년 만에 세상은 바뀌었다. 1980년대 초 등장한 MTV는 가수에게 작곡 능력이나 목소리만큼 외모가 중요한 시대를 열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시대의 가수에게는 어쩌면 작곡 능력이나 목소리보다 외모가 더 중요해졌다. 만약 필 콜린스가 2000년대에 태어났다면 일찌감치 가수를 포기하고 젊고 아름다운 가수들에게 노래를 파는 작곡가로 활동했을 것이다. 지금 음악 시장은 더는 필 콜린스처럼 생긴 아재가 사랑 노래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가수로 데뷔해 “So, take a look at me now(그러니 나를 한번 봐줘요)”라고 노래하는 순간 젊은 청중은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 것이다.
팝 시장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 아이돌 시장도 마찬가지다. 나는 최근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의 남자 그룹 라이즈(RIIZE)를 보고 감탄했다. 모든 멤버가 모델처럼 예뻤다.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 뉴진스도 마찬가지다. 예전 아이돌 그룹에는 외모 다양성이 있었다. 모든 멤버가 고르게 예쁜 건 아니었다. 메인 보컬을 맡은 친구들은 ‘비주얼 멤버’에 비해 약간 외모가 달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을 아이돌로 받아들였다. 노래만 잘하면 아이돌 그룹 멤버가 될 수 있었다. 요즘 아이돌은 그렇지 않다.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가 있어야 한다. 못난 아재 가수들이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청 하나로 100만장을 팔아 치우던 시대는 1990년대 어느 시점에서 종말해 버린 걸지도 모른다.
한 가지 예언을 하며 이 글을 끝내야겠다. 언젠가는 책이나 기사를 클릭하면 글쓴이 얼굴이 자동으로 뜨는 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이미 글보다는 외모로 수십만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가진 새로운 시대의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절차일 것이다. 몇 년 전 내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집 제목은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였다. 내 얼굴을 띠지로 둘렀다면 책은 지금의 절반도 팔리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이 시대에 이 얼굴로 낭만을 이야기하는 건 필 콜린스가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과도 비슷한 일이다. 외모가 책 판매량을 완전히 좌우하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열심히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한다. 이것이 과체중 중년 작가의 다짐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9/22/7QZLMXDCWBFXBC2CNSIE52JM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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