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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간판·현수막… 집중력을 도둑질하는 도시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입력 2024.01.16. 03:00

스마트폰 중독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인데
도시 곳곳 LED 광고, 비방 정치 현수막까지 너무 많아
인터넷 댓글 도배 느낌… 분노와 선동 대신 美를 보고파

일러스트=이철원


우리는 한때 ‘간판 정비 사업’을 열심히 했다. 우리 도시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가 간판의 무분별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종로 뒷골목의 어지러운 간판들을 들었다. 그런데 정작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 간판을 이국적이라고 좋아한다.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의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을 보면 멋진 야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나의 미국인 친구들은 라스베이거스의 간판이 천박하다고 싫어한다.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모국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되어 있는 간판은 읽을 수 있어서 정보가 된다. 반면에 읽어도 뜻을 잘 모르는 외국어 간판은 장식이다. 우리에게 국내의 간판들은 정보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간판은 정보 과잉 문제를 일으킨다. 반면 한글을 읽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글 간판은 아름다운 아르누보 양식의 다채로운 장식이 된다.

정보가 지나치게 공급되면 우리는 피로를 느낀다. 우리 뇌는 자동적으로 정보를 프로세스하기 때문이다. 요한 하리가 쓴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 따르면, 우리는 스마트폰 때문에 쓸데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보게 된다고 한다. 많은 정보가 들어올수록 우리의 집중력은 떨어진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는 또 인간의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 태스킹’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컴퓨터가 멀티태스킹이 되다 보니 컴퓨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인간 뇌도 멀티태스킹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한 하리의 책에 따르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우리 뇌가 이쪽 저쪽을 아주 빠르게 왕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운전하면서 스마트폰을 확인하면 1초에도 수십 번 뇌가 자동차 전면과 스마트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뇌는 일 한 가지에 오랫동안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이 손상된다고 책은 경고한다. 지난 5년간 성인들의 주의력 결핍 장애(ADHD)는 5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주변의 많은 정보는 우리 뇌를 망가뜨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대도시에 사는 우리 국민은 여러 가지로 시달리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 고개를 들어도 수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간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하나 더 늘어서 동영상 광고를 쏟아내는 LED 광고판이 너무 많다. 내가 주로 활동하는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주변에는 지난 5년간 너무나 많은 동영상 간판이 들어섰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물체에 시선이 간다. 수백만 년 진화해오는 동안 외부에서 오는 변화를 빠르게 감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계속 움직이는 광고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손상된 나의 집중력을 더욱 손상하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거리마다 걸린 상대 정당 비방 플래카드다. 이게 더 나쁘다. 왜냐하면 동영상 광고들은 아름다운 영상미라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비방하고 조롱하는 정치 플래카드는 기분을 나쁘게 한다. 정작 걸어놓은 사람들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원치 않는 부정적 감정을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인터넷 기사 댓글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대부분 분노와 조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댓글은 내 주의력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내 감정까지도 조종한다. 길가의 정당 플래카드들을 보면 인터넷 댓글이 도시 전체를 도배한 느낌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읽는 사람의 감정을 동요시켜 선동하려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선동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이다. 그들의 선동이 도시 전체에 도배되는 것은 우리 일상을 방해하는 공해다.

이제 4월 총선이 다가온다. 이러한 선동 플래카드들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국민은 더욱 분노하고 갈라질 것이다. 제발 우리 일상을 당신의 분노로 방해하지 말라.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국민을 분열시키지 말라. 우리는 서로 간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제발 이 도시에 분노의 정보 대신 아름다운 건축물이 넘쳐나길 바란다.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1/16/GNMTF2PPGZE7VCUKLOGG3SQ7X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