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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북한 철도 사고

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2024.01.17. 19:59 업데이트 2024.01.18. 00:19

일러스트=이철원


북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주민들이 열차 지붕에 오르거나 승강구 난간에 매달려 가는 장면이 흔하다. 북한 열차는 한번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기를 쓰고 타는 것이다. 객실 안은 만원인 데다 난방, 냉방 시설이 없어 냄새가 진동한다고 한다. 가다가 연착하면 언제 출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며칠간 역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인근 민가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왔더니 기차가 떠나버렸다는 탈북자들 증언도 많다.

북한에서 철도는 화물의 90%, 여객의 60%를 담당하는 중심 교통수단이다. 그런데도 철도 상태는 상상을 넘어선다. 평양에서 열차로 북부나 동부 지방에 가려면 최소 열흘은 각오해야 한다. 북한 철도는 대부분 노선이 시속 20㎞대로 운행한다. 황영조·이봉주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다. 여행 증명서 없이는 여행이 불가능하지만, 설사 증명서를 얻어도 가는 길이 하염없어 먼 지역에 사는 부모, 자식은 이산가족과 다름없다. 부모 별세 소식을 듣고 집에 도착하면 장례식이 끝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동의 자유가 법적으로도 없고, 교통 때문에도 없다. 이런 나라는 북한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철도가 엉망인 것은 낡은 데다 보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철도는 97%가 단선이다. 기차가 오면 다른 기차는 비켜서 기다려야 한다. 80%가 전기로 움직이는데 전력이 약하고 그마저 끊기면 한없이 기다린다. 1939년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기차로 7시간 걸렸다고 하니 일제강점기보다 훨씬 후퇴했다. 김정은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오시면 우리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사람들이 다 고속 열차가 좋다고 하더라”고 실토할 정도다.

북한 열차가 지난해 말 전기 부족으로 고개를 넘지 못해 전복되면서 4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열차가 함경남도에서 높은 고개를 넘으려다 뒤로 밀려 탈선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당시 산골에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용악의 시 ‘그리움’은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로 시작한다. 이용악이 1945년 서울에 혼자 와 있을 때 추운 겨울에 함경북도 무산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백무선은 백암역과 무산역을 오가는 철길로, 이번 사고 지점보다 북쪽에 있다. 마침 서울에도 함박눈이 내리는 날, 북한 열차 대형 사고 소식을 들으니 더 안타깝다.

이용악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1/17/GM6XOIWPPFEXHBXHNNVW44A5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