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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중동 난장판

이하원 기자
입력 2024.01.18. 20:38 업데이트 2024.01.19. 00:55

일러스트=이철원


이란과 파키스탄 해군은 지난 1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파키스탄 군함이 이란 항구에 들렀다가 함께 훈련에 돌입했다. 비상시에 쓸 통신 회로를 점검하고, 전술 기동훈련을 함께 했다. 공중에선 이란 해군 헬기도 참여했다. 이란군은 “파키스탄 함대의 이번 방문은 군사 교류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성명도 발표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란군은 파키스탄 남서부를 미사일로 타격했다. 반(反)이란 무장조직 기지가 있다는 곳이다.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어린이 2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그러자 파키스탄이 반격에 나섰다. 이란 남동부를 공격했는데 최소 9명이 숨졌다. 두 나라가 같은 날 한쪽에서는 연합훈련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교전을 벌인 것이다.

지금 중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난장판’이다. 얽히고설킨 채 서로 치고받는다. 외부인들은 누가 누구와 왜 싸우는지 알기도 어렵다. 난장판의 시작은 2018년 사우디 빈 살만의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이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빈 살만을 맹비난했다. 그러자 빈 살만은 2022년 사우디를 방문한 바이든의 석유 증산 요구를 거부하고 빈손으로 돌려 보냈다. 수십년 맹방 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을 초청해 극진히 대접했다. 정보통신, 건설 분야 등에서 38조원 규모의 협정을 체결했다. 빈 살만은 나아가 시아파 지도자 처형 문제로 단교했던 이란과 시진핑의 중재로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미국이 싫어할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미국의 중동 장악력이 흔들리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으로 나라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 틈을 타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지옥문을 열었다. 이스라엘의 반격은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의 연쇄 반발을 불렀다.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세력이 중동 미군 기지들을 공격하고 후티 반군은 그나마 평화롭던 홍해에 미사일을 난사하고 있다. 이 난장판에 돌연 수니파 IS가 끼어들어 이란에서 테러를 벌이자 이란이 파키스탄 공격으로 대응한 것이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미국은 16일 사우디의 브릭스(BRICS) 가입을 막아 체면을 세웠으나 과거의 중동 영향력을 회복할지 미지수다. 후티 반군에 대한 공격도 미국 대선 때문인지 하는 시늉만 내는 수준이다. 매년 세계 전망을 내놓는 이코노미스트도 중동에 대해선 “평화 계획을 세우기에 무덤 같은 장소”라면서 “아직 시도하지 않은 아이디어는 평화 추구밖에 남지 않았다”는 하나 마나 한 말만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1/18/QXQKAQPVU5GKNDGIPNL5JP3Z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