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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소녀가 전하는 위로 ‘바람 바람아’

김광일 기자
입력 2024.03.01. 20:00 업데이트 2024.03.02. 01:43

일러스트=이철원


3년 전 아홉 살 소녀가 불렀던 노래 ‘바람길’을 잊지 못한다. 원래 장윤정이 부른 곡이었으나 앳된 ‘판소리 신동’ 김태연은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전혀 다른 빛깔로 빚어냈다. ‘길을 걷는다/ 끝이 없는 이 길/ 걷다가 울다가 서러워서 웃는다’로 시작하는 노래는 ‘스치듯 지나는 바람의 기억보다 더/ 에일 듯 시리운 텅 빈 내 가슴’으로 이어진다. 때로 슬픔이 넘치면 차라리 웃는다고 했다. 그 시린 서러움에 시청자도 먹먹해졌다.

▶가수의 삶을 베껴서 노래가 되기도 하고, 또 가수의 삶이 노랫말을 따라가기도 한다는데 어른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아이의 목소리가 그토록 어른 애간장을 녹일 만큼 애달플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무방비로 있던 심사위원이 눈물을 쏟았고, 할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댔다. 심사위원 장윤정은 딸 같은 김태연에게 곡 해석과 창법 모두에서 “네가 다 옳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태연은 당시로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제 미스트롯3에서 톱7 결정전이 펼쳐졌는데, 열다섯 소녀 정서주가 1등을 차지하며 심사위원을 또 울려놓았다. 정서주는 첫선 신곡 ‘바람 바람아’를 들고 나왔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낯선 바람 바람아/ 덧없는 한 세상 답답한 마음을/ 너는 달래주려나’ 하는 노랫말이 잔잔하게 흘렀다. 연습 때 정서주가 아빠에게 전화로 여쭙자 아빠는 “기댈 곳도 없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노래”라면서 “담담하게” 부르라고 말해준다.

외친다고 감정이 따라오는 건 아니다. 외려 글도 노래도 나직하고 담담해야 공감의 울림통이 커진다. ‘세상에 지쳐 울고 싶은 날/ 나는 바람이 되어/ 한없이 위로가 되는 당신 곁으로 가서/ 참아온 눈물을 쏟고 싶구나’. ‘아모르 파티’의 김연자가 심사위원이었는데 휴지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시작부터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눈물이 계속 나올 것 같아서, 마스터로서 자격이 없네요, 냉정하게 들어야 되는데….”

김연자도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것이 미스트롯의 힘일까. 지난 삶의 괴로웠던 순간을 다시 끄집어 올려서 따뜻하게 치유해준다. 중견 방송인 이경규는 “선풍기가 시원하지 않은 것은 그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 때문이며, 자연 바람이 시원한 것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람을 소재 삼은 노래가 수백 곡이 넘겠지만 어린 소녀들 노래에서 크게 위로받는 것은 그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산들바람이기 때문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한 요즘 세상에….

김태연 - 바람길
장윤정 - 바람길
정서주 바람 바람아
김연자 - 아모르 파티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3/01/5OEVGJJYIRC5JBSSXIHIZUGKA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