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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광어 4만원 적어놓고 “5만원”… 소비자 바보 만드는 ‘바가지 공화국’

사람만 몰리면 가격 부풀려
이미지 기자 송혜진 기자
입력 2024.03.07. 04:25 업데이트 2024.03.07. 06:54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4일 인천 소래포구 종합 어시장. 한산한 평일 점심 시간 시장에 들어서자 “언니 이리 와”라며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이어졌다. 이 중 한 상인이 기자의 팔을 끌며 “주꾸미 1㎏에 4만원”이라고 했다. “좀 더 둘러보겠다”고 하자 그는 “1㎏에 3만5000원”이라고 가격을 낮췄다. 바로 옆 다른 상점 주인은 “주꾸미 상품(上品) 1㎏에 3만원”이라고 했다.

인천 소래포구는 최근까지 ‘깜깜이 가격’, 상품 무게를 늘리기 위해 물을 더 넣는 소위 ‘물치기’, 다리가 잘렸거나 몸통이 망가진 대게 등을 섞어 파는 ‘섞어치기’ 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곳이다. 논란이 심해지자 작년 상인들은 다 같이 절을 하며 “뼈 깎는 자세로 자정 노력을 보여주겠다”고 한 바 있다.

이날 기자가 다시 찾은 소래포구는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일반 소비자들은 품목당 1㎏에 정확히 얼마인지 기준 가격조차 알기 어려웠다. 한 가게 주인은 중간 크기 피조개 1㎏을 “2만8000원”이라고 했다. 수협에 따르면 이날 여수 피조개는 1㎏(중간 크기)에 1만800원 정도였다. 소비자들은 이런 가격 차이를 일일이 알기 어렵다.


세계 GDP 13위 대한민국이 ‘바가지 공화국’이라는 오명에 계속 몸살을 앓고 있다. K컬처 열풍으로 작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1103만명에 달하지만, 국내 유명 전통 시장과 명동을 비롯한 주요 상권, 제주도·강원도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바가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르는 게 값인 ‘바가지 공화국’

일요일인 지난 3일 오후 4시쯤 명동 쇼핑 거리는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곳곳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들렸다. 외국인 관광객 수십명이 몰린 한 길거리 음식점에선 손가락 마디만 한 꼬마 김밥 6줄을 6000원에 팔고 있었다. 일반 식당보다 50%가량 비싼 수준이다. 버터구이 오징어는 1만5000원으로 국내 대형 영화관 판매 가격의 3배 수준이었다. 이날 만난 한 베트남 관광객은 “모든 가격이 예상보다 너무 비싸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어시장서 '저울 눈속임 점검' - 지난 5일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남동구청 직원들이 저울 눈속임 등 불법 상거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뉴 바꿔치기’, ‘최소 주문 기준 맘대로 바꾸기’에 대한 신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광장 시장에선 한 유명 여행 유튜버가 8000원짜리 순대 메뉴를 시켰는데 판매상은 내장이 섞인 모둠 순대를 1만원에 내밀어 이른바 ‘메뉴 바꿔치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선 곰장어 2인분을 주문한 손님에게 “최소 5인분은 주문해야 먹을 수 있다”고 대답해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끓게 한 바 있다. 대구 서문 시장에선 한 상인이 일본인 관광객에게 가짜 밍크 모자 제품을 20만원에 팔려고 하는 장면이 유튜브 영상으로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해당 제품은 국내 상당수 온라인 몰에서 4만~5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국내 주요 놀이공원과 스키장, 골프장 등에서도 ‘깜깜이 가격 논란’은 이어진다. 강원도 스키장 한 식당은 소고기 미역국을 1만9000원, 어린이 전용 메뉴인 반상을 1만5000원씩 받는다. 경기도 한 골프장은 전복이 들어간 미역국을 3만6000원, 사이다 1병을 7000원 받는다.

 


◇제주·강원도 ‘바가지 요금’에 몸살

제주도나 강원도의 국내 대표 관광지도 바가지로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는 고등어회 3만원어치를 주문했더니 20점만 내준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강원도 속초에선 대게 2마리를 25만원에 팔면서도 대게보다 저렴한 홍게를 섞은 사례가 신고됐다.

‘바가지 상혼’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방문을 기피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2022년 기준 주요국 관광산업 경쟁력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종합 평가에서 15위에 올랐지만 가격 경쟁력 부문에서는 80위에 그쳤다. 관광·유통 업계 관계자들이 “바가지 요금 논란이 모처럼 기지개 켜고 있는 관광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적 망신까지 초래할까 우려스럽다”고 하는 이유다.

제주도는 바가지 요금 논란으로 관광객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겪고 있다. 작년 1~10월 기준 제주도 3박 4일 여행 1인당 지출 금액은 52만8000원으로 국내 여행 평균(33만9000원)보다 1.6배 비쌌다. “제주 갈 돈이면 일본 여행이 낫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올해 1월 제주도를 찾은 여행객은 97만6888명(내국인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난 관광객 수(198만7038명)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원글: https://www.chosun.com/economy/market_trend/2024/03/07/KV3FQP3VAZHVZMSIILVP6G6O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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