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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청도 미라’와의 대화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4.11. 20:00 업데이트 2024.04.12. 00:17

일러스트=이철원


3000년 전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은 10대 때 일찍 죽는 바람에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람세스 못지않게 유명한 파라오가 됐다. 그의 무덤만 유일하게 도굴을 면했기 때문이다. 황금 마스크 등 유물 수천점과 그의 미라가 3000년 전 고대로 가는 문을 열었다.

투탕카멘 미라는 장기를 모두 제거하고 40일간 건조한 뒤 톱밥을 넣고 아마포로 감아 만들어졌다. 자연 상태에서 미라가 되기도 한다. 1991년 알프스 빙하 지대에서 발견된 ‘얼음 인간 외치’는 추운 환경 덕분에 시간의 무게를 견뎠다. 외치는 키 160㎝, 몸무게 50㎏, 혈액형은 O형이었다. 몸에 문신을 새겼고 등에 화살 상처가 있는 그는 용맹한 전사였을 것이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는 밀과 고사리, 염소와 사슴 고기였다. 그의 몸이 5300년 전 선사시대 인류의 삶을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도 미라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15~16세기에 유행했던 회곽묘(灰槨墓)에서 나온다. 석회로 목곽을 둘러싸는 회곽묘는 석회 두께가 최대 35㎜여서 물과 짐승이 침범하지 못한다. 석회는 굳을 때 고열을 낸다. 이때 내부가 건조되고 미생물도 사멸해 미라가 만들어지고 유물도 온전하게 보전된다는 것이다.

▶가슴 절절한 사연도 함께 세상 빛을 보곤 한다. 경북 안동에서 미라로 발견된 이응태는 1586년 31세로 죽었다. 관을 열었더니 아내가 저승 가는 남편에게 신고 가라며 자기 머리를 깎아 만든 신발과 남편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가 출토됐다. ‘당신, 항상 내게 이르시기를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시나요’로 시작한다. ‘여보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중략) 내 마음 어디다 두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니 이 편지 보시면 내 꿈에 나타나 자세히 말해 주세요’라 적혀 있다. 중세 한국어를 파악할 수 있어 자료 가치도 크다.

▶국립 대구박물관이 경북 청도에서 10년 전 발굴된 미라를 연구해 그 성과를 최근 공개했다. 미라 주인공은 1642년 숨진 이징이란 인물이다. 회곽묘에 안장된 덕분에 누비저고리와 도포 적삼 등 당시의 복식에서부터 기생충 4종과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미라가 시공을 초월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풍성한 문화의 샘도 된다. 1932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영화 미라(The Mummy)를 선보인 걸 계기로 많은 영화가 제작됐다. 우리도 이응태 부부의 사연이 소설과 창극, 오페라로 만들어져 사랑받는다.

투탕카멘
람세스
이응태 묘 한글 편지
미라 이징
1932년 영화 The Mummy
 


이응태묘 출토 원이엄마 한글편지

원글: https://blog.naver.com/sohoja/50133922923

원이 아바님께 샹백(뒷면)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지븨셔
 
자네 샹해 날다려 닐오듸 둘히 머리 셰도
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
야 나랄 두고 자내 몬져 가시난 날하고
자식하며 뉘게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
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 자내
날 향회 마아믈 엇디 가지며 난 자내 향
회 마으믈 엇디 가지던고 믜양 자내 다려 내
닐오듸 한듸 누어셔 이보소 남도 우리
가티 서로 에엿삐 녀겨 사랑하리 남도
우리 가탄가 하야 자내다려 니라더니 엇디
그런 이를 생각디 아녀 나랄 바리고 몬져
갓난고 자내 여회고 아마려 내 살셰 업
사니 수이 자내한듸 가고져하니 날 다
려가소 자내 향회 마아믈 차생 니즐준
리 없사니 아마래 션운 뜨디 가이없
사니 이내 안한 어듸다가 두고 자식
다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이
다 이내 유무 보시고 내 꾸메 자셰와 니
라소 내꾸메 이 보신 말 자셰 듣고져 하야
이리 서년뇌 자세보시고 날 다려 니
로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를 일
란고 그리 가시듸 밴자식 나거든 누를
아빠 하라 하시난고 아마려 한들
내 안 가틀가 이런 텬디 가슨 한이리

세로
하늘 아래 또 이실가 자내난 한갓 그리 가 겨실 뿌거니와 아마려 한들 내 안
가티 셜운가 그지 그지 가이없서 다 몬서 대강만 뎍뇌 이 유무 자세 보
시고 내 꾸메 자셰와 븨고 자셰 니라소 나난 꾸믄 자내 보려 믿고 인뇌이다 몰래 뵈쇼셔

처음부분 거꾸로
하 그지그지 업서 이만 젹뇌이다
 
 
병술년 - 1586년 선조19년
이응태 - 안동 고성이씨 무관 가문 이요신의 아들
상해 - 늘
걸하야 - 의지하여
믜양 - 매번
차생 - 이번 생
안 - 속, 마음
유무 - 편지
 
풀어 쓴 글
 
원이 아버님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는가요
나하고 자식은 누구에게 의지하여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 날 향해 마음을 어떻게 가졌고 나는 당신 향해 마음을 어떻게 가졌던가요 
늘 당신에게 내가 말하기를 함께 누워서 이보소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
남도 우리 같을까 하며 당신에게 말했는데 어찌 그런 일은 생각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갔나요
당신을 여의고 아무래도 내 살 수가 없어 빨리 당신에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세요
당신 향한 마음은 이생에서 잊을 수 없으니 아무리해도 서러운 뜻이 끝이 없으니
이내 마음 어디에다 두고 자식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까 하노이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말해주세요
내 꿈에 이 편지 보신 이야기 자세히 듣고저 이렇게 써 넣으니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밴 자식 낳거든 보고 말할 일 있는데 그리 가시니
밴 자식 낳거든 누구를 아빠 하라고 하시는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
이런 천지 같은 한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
그지없어 다 못적고 대강만 적으니
이 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꿈에 자세히 보이고 자세히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보리라 믿고 있습니다
몰래 보여주세요
그지없어 이만 적습니다 
 
 
To Won's Father

June 1, 1586

 
You always said, "Dear, let's live together until our hair turns gray and die on the same day.
How could you pass away without me? Who should I and our little boy listen to and how should we live?
How could you go ahead of me?
How did you bring your heart to me and how did I bring my heart to you?
Whenever we lay down together you always told me,
"Dear, do other people cherish and love each other like we do? Are they really like us?"
How could you leave all that behind and go ahead of me?
I just cannot live without you. I just want to go to you. Please take me to where you are.
My feelings toward you I cannot forget in this world and my sorrow knows no limit.
Where would I put my heart in now and how can I live with the child missing you?
Please look at this letter and tell me in detail in my dreams.
Because I want to listen to your saying in detail in my dreams I write this letter and put it in. Look closely and talk to me.
When I give birth to the child in me, who should it call father? Can anyone fathom how I feel?
There is no tragedy like this under the sky.
You are just in another place, and not in such a deep grief as I am.
There is no limit and end [to my sorrows] that I write roughly.
Please look closely at this letter and come to me in my dreams and show yourself in detail and tell me.
I believe I can see you in my dreams. Come to me secretly and show yourself.
There is no limit to what I want to say and I stop here.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4/11/OQGUQFCHZ5BMHHGXPORJCWXR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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