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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세상만사] 서바이벌 게임·상황극… AI 면접에 취준생 ‘쩔쩔’

AI가 표정·눈동자까지 포착해 평가
김보경 기자
입력 2024.04.30. 03:00


최근 A은행 입사 시험에 응시한 이모(25)씨는 ‘AI(인공지능) 역량 검사’ 전형에서 “상황극에 대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제시된 상황은 ‘친구가 내 생일에 딸기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줬다. 그런데 사실 나에겐 딸기 알레르기가 있다. 기대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였다. 이씨는 “친구야 케이크 너무 예쁘다. 그런데 어쩌지? 나 딸기 알레르기가 있어”라고 답했다. AI 면접관은 이씨의 표정과 눈동자 움직임, 답변 내용을 녹화해 분석했다. 이씨는 “생각도 못 한 상황이 제시돼 당황스러웠다”며 “다음 시험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AI 역량 검사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신입 사원 채용 평가에 AI 면접관을 도입해 순발력과 창의력을 시험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인간 평가자가 놓치는 면접자의 특징을 포착하고, 공정성 시비도 피해가기 위해서다. AI 면접관 평가는 주로 서류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 실무자와 대면 면접을 치르기 전 시행된다. 컴퓨터로 시험을 치르면 녹화된 화면을 AI가 분석해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한다. 면접자의 표정과 눈동자는 물론 땀까지 포착해 진정성과 긴장도까지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한 기업 AI 면접관은 ‘본인은 늦은 나이에 가수의 꿈을 이루고 싶지만, 부모님은 공무원을 하라고 한다’ ‘계획적으로 여행하는 친구, 즉흥적으로 여행하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등의 상황을 제시했다. 응시자들은 카메라를 보며 가상의 상대를 설득하거나 연기를 해야 한다. 녹화된 영상은 AI 역량 검사를 개발한 업체로 전송되고, 시선 처리 등을 분석해 위기 대처 능력을 평가한다고 한다.

게임 형태로 응시자들을 평가하는 AI 역량 검사도 있다.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 속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 캐릭터를 생존시키는 게임이다. 채용 응시자들은 게임을 통해 체온이나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토끼 가죽을 구하고, 옷을 만들어 입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게임 제작 업체 관계자는 “게임에서 보여준 응시자의 생존 능력으로 다각적인 지능과 상황 대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구직자는 이 같은 AI 역량 검사가 당혹스럽다고 했다. 작년 말 게임 형식 AI 역량 검사에 응시한 진상아(23)씨는 “게임 수행이 직무 능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고, 변별력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며 “또 AI역량 검사를 통해 어떤 역량을 보려고 하는 것인지 아무런 정보도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통지를 받았을 때 어떤 점이 부족해 떨어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어 허탈할 것 같다”고 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AI가 어떤 기준과 평가 항목으로 응시자를 판단하는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되다 보니 지원자들이 오히려 AI의 변별력을 의심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며 “AI 면접관을 전면 도입하기 전 충분한 합의와 설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04/30/JY46LLIG2NAK7EAGS3J6BAU3R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