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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전기차 악재에 K배터리 휘청… 中은 해외로, 日은 전고체로 추격

[그래도 전기차가 미래다] [中] '수퍼 乙' 전기차 생태계도 흔들
이정구 기자
입력 2024.08.27. 00:55 업데이트 2024.08.27. 05:53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 모형도


K배터리 생태계는 전기차 시장 전환을 예견한 빠른 판단과 한국 제조업의 축적된 기술력이 시너지를 내왔다. 소재 기업과 배터리 기업이 협업해 고성능 ‘세계 최초 하이니켈’ 배터리 등을 개발하면, 국내 부품·장비 업체들이 빠르게 맞춤형 설비를 제작해 공급했다. 업종별 기술력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가 주요 부품·장비의 국산화 비율이 30%대에 그치는 것과 달리 국내 배터리 3사의 장비 국산화 비율은 90%가 넘는 이유다.

다만, 촘촘한 전기차·배터리 생태계는 악재가 닥쳤을 때 ‘동반 부진’에 빠지는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고, 최근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전기차 포비아 등으로 그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K배터리가 주춤한 사이 경쟁국인 중국은 대규모 내수 시장을 넘어 북미·유럽 등 K배터리의 주요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은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로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K제조업, 배터리에서도 세계 최초·최고 기술력

대구 달서구에 본사를 둔 양극재 제조 중견기업 엘앤에프는 작년 2월 미국 테슬라와 약 3조8000억원 규모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유럽 한 배터리 회사와 6년간 9조2400억원 규모 양극재 장기 공급 계약을 따냈다.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 시장에서, 테슬라의 파트너가 누가 될지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엘앤에프가 선택됐다. 이 회사는 수십조원대 수주 잔고를 바탕으로 대구산단에 향후 2조55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증설한다고 작년 12월 밝혔다.

제조업 노하우를 살려 전기차 산업에 일찍 뛰어든 판단도 주효했다. 애초 LCD 부품을 만들던 엘앤에프는 2007년 삼원계 NCM(니켈·코발트·망간) 양극재 생산에 이어 2019년 세계 최초로 니켈 비율을 90%까지 높이고 알루미늄을 추가한 ‘하이니켈 NCMA’ 양극재도 개발했다. SK넥실리스는 2019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4㎛(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두께의 초극박 동박을 양산해, 이차전지 음극재용 동박 시장에서 앞서나갔다. 장비 업체 한화모멘텀은 배터리 전 공정에 들어가는 장비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회사다. 전기차의 심장 역할을 하는 ‘구동모터코아’에선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포스코의 전기강판과 금형 기술 노하우를 살렸다. 그 외 부품·장비 분야에서도 강소기업들이 ‘형님 역할’을 하는 배터리 3사가 북미, 유럽으로 생산 거점을 확대할 때 동반 진출하며 K배터리 생태계를 해외까지 확장했다.

◇캐즘·위기론에 속도조절…中·日 치고 나간다

전례 없는 전기차 시장 급성장 때, 배터리 3사를 중심으로 K배터리는 대거 투자를 늘렸는데 캐즘발(發) 1차 충격 여파가 예상보다 더 크다는 평가다. 당장 올해 2분기 배터리 3사 영업이익 합계는 154억원으로, 1년 전(7793억원)보다 5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소재, 부품·장비 기업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전기차 생산량을 줄이면 차례로 배터리, 소재 주문이 줄어든다. 이 시기 현대차·기아 등은 내연차,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배터리 기업은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포트폴리오가 다른 제품으로 캐즘에 대처할 수 있지만, 소재, 부품·장비는 사실상 ‘배터리 올인’으로 의존도가 더 높아 타격이 크다.

K배터리는 중국 외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등 최상위권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는 아직 주행거리, 화재 위험 등 불안 요소가 적지 않아, 현재의 구도를 뒤집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K배터리가 고성능 NCM 배터리에 집중할 때, 가격이 저렴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장악한 중국은 주행거리를 늘리는 등 LFP 배터리의 단점을 개선해 LFP의 시장 점유율을 37%까지 늘렸다. 또, 편파적인 자국 기업 보조금으로 내수 시장을 독점한 뒤 유럽, 북미 진출도 확대하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이자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는 일본이 속도를 내고 있다. 도요타는 1990년대부터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00여 건의 특허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은 정부가 나서 2030년까지 총 5조6000억엔(약 51조6200억원)의 배터리 분야 민관 투자를 진행 중이다.

캐즘(chasm)
캐즘은 첨단 제품의 초기 시장에서 일반인이 널리 사용하는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단절 현상을 가리킨다.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등이 그랬듯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도 최근 캐즘을 맞고 있다.

원글: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4/08/27/3QYQL3F3SJH6PIY4TVCWAUR5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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