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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엄마의 환갑… 그녀의 시간은 이제 시속 60km다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입력 2024.08.29. 00:04

환갑 맞은 엄마… 이번엔 돈 대신 첫 해외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아빠의 연이은 발병… 처음 만든 여권도 다 무용지물
치료 때문에 함께 보낸 시간… 엄마는 여행보다 그게 더 소중했다

일러스트=이철원


얼마 전 엄마의 생신이었다. 갈수록 내 생일은 다른 날과 다름없어지지만, 부모님의 생신은 어떻게라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 연중 큰 이벤트가 되어간다. 게다가 이번엔 엄마의 환갑이었다. 과거와는 의미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환갑 뒤에는 ‘잔치’가 자연스레 따라올 만큼 생에 몇 안 되는 변곡점이다. 여태껏 엄마의 선물은 용돈으로 편하게 때워왔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라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선물을 하자고 마음먹으니, 몇 년 알고 지낸 친구의 취향은 기가 막히게 파악하면서 30년을 넘게 알아 온 엄마의 취향은 쥐뿔만큼도 모른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옷을 사러 가도 매번 의견이 갈리던 우리였다. 그저 엄마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엄마의 취향을 들여다볼 생각까진 못 했던 것이다.

사실 엄마에게 가장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의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스무 살 이후에는 줄곧 떨어져 살았으니, 엄마와 나는 내가 대구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의 활동 반경은 대구 시내 딱 그 정도였다. 간혹 명절을 이용해 다른 도시에 여행을 가긴 했지만, 그것도 부산이나 포항, 경주같이 가까운 거리 내에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매번 친구들과 여행을 다닐 때마다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를 달고 살았다. 그렇지만 엄마도 일터를 비울 수 없었고 나도 경제적 여유가 충분치 않아 속으로만 곱씹었다.

그러나 2년 전 나와 엄마가 차례로 암 투병을 하게 되어 엄마는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엄마가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모습을 난생처음 보게 된 나는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회복을 마치자마자 엄마와 아빠를 끌고 가 여권 사진을 찍어 여권을 만들고, 여행을 계획했다.

계획과는 반대로 흐르는 일이 인생에 종종 생긴다는 것쯤은 이제 안다. 그래도 비행기 티케팅만을 남겨둔 시점에 아빠마저 암 투병 소식을 전해온다는 것은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내가 항상 준비될 때만을 기다렸는데, 내가 자리를 잡고 뒤를 돌아보니 나와 성큼 거리가 멀어져 버린 부모님이 있었다. 엄마의, 아빠의 시간은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조금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온 가족이 서울에서 병원을 다녔기에 진료 예약이 있을 때마다 만나게 되니 같이 살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때보다 엄마의 얼굴을 자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서울에 올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장소로 데리고 다녔다. 병원 근처의 서순라길에서 분위기 있게 파스타도 먹어보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강 라면도 먹고, 진료 시간이 붕 뜨면 병원 앞 창경궁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이게 여행이지 다른 게 여행이겠냐’고 말했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슬프게 들렸는데, 내가 엄마를 자주 데리고 다녀주지 못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꼬아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라고는 할 줄을 모르는 양반이었는데,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저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자체가 엄마에게 여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여행은 ‘어디’인지보다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이제 가까이 붙어 산 것보다 멀리 떨어져 산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홀로 하는 타향살이에 적응을 못 해 대학 시절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갈아입을 옷 하나 없이 고속버스에 올라타 도망치듯 고향집에 내려가던 나보다, 엄마의 언제 한번 내려오냐는 물음이 더 가까워진 내가 있다.

결국엔 올해도 선물은 용돈이었지만 대신 애써 휴가 한 주를 내어 모두 엄마에게 바치기로 했다. 30대가 되고서 엄마가 나에게 했던 첫 번째 말은 이제 시간이 30km로 갈 거란 말이었다. 그 말은 이제 엄마의 시간도 60km 속도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란 이야기였다. 엄마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나는 튼튼한 다리로 달릴 수 있으니, 최대한 엄마의 시간을 따라잡아 보려 노력하려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8/29/VYMN4FB2PVG23FG74EWDDIXCU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