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입력 2024.10.07. 00:21
이민가는 국민, 돌아온 이의 두배… 美 외에 국제사회 우군도 없어
팔 민간인 사망 4만 육박… "부모잃은 고아들, 하마스 자원 입대
"9·11 이후 美의 이라크전쟁이 승리한 걸까… 이, 반면교사 삼아야
1년 전 오늘, 하마스의 기습 테러는 무도했다. 중동판 9·11이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파상 공세였다. 가자는 초토화되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수괴를 비롯한 핵심 지도부를 적진 한가운데서 제거했다. 정보력과 공작 능력에 세계가 놀랐다. 특히 무선 호출기 연쇄 폭발로 헤즈볼라의 지휘 통제망을 무력화시킨 장면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전선을 북부로 확대했다. 지상군을 레바논 남부로 투입, 헤즈볼라 거점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작년 피습은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의 악몽을 연상시켰다. 방심으로 아랍 연합군에게 기습을 당했던 4차 중동전쟁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이젠 1967년 6일 전쟁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당시 아랍 영토를 파죽지세로 점령했던 압도적 승리를 재현하는 것 같다. 추락했던 네타냐후의 지지율이 반등 기미를 보이자 차제에 판을 바꾸려 한다. 레바논 공습과 진격은 물론 이란과의 일전도 불사할 태세다. 꼭 1년 만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 것 같다. 이스라엘의 공세를 상찬하며 전쟁은 저렇게 해야 한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탁월한 정보력과 치밀한 작전 수행 능력, 그리고 준비 태세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면전을 마다 않는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능력에 대한 찬탄과 별개로 이스라엘은 이 시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한다. 전쟁을 통해 더 안전해졌는가? 더 안전해질 것인가? 적, 국민, 그리고 친구, 세 측면에서 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첫째, 미래의 적을 키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응징은 정당했으나 더 정밀해야 했다. 자국 국민 1200명의 죽음에 대한 보복은 좋으나 하마스 대원 아닌 4만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죽음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다. 하마스의 카셈 여단 대변인은 현 무장 대원의 85%가 이스라엘에 의해 부모 잃은 고아라고 했다. 이번에 사망한 가자지구 주민의 자녀들은 10년 후 목숨 걸고 복수에 나서는 하마스 대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는 조직이 아니라 이념이다. 조직은 물리력으로 해체할 수 있지만, 이념은 상위의 가치로 압도해야 한다. 민간인 피해를 최대한 회피하며 인권을 챙기는 공세를 펼쳐야 했다. 현장 지휘관들의 노력은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와 극우파 각료들의 입장은 초토화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개전 초기 연설에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숙적 아말렉을 언급하며 구약성서의 정복 서사 기억을 독려했다.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구약성서 사무엘상 15장을 연상시켰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국제사법재판소에 학살 혐의로 제소되었다.
둘째, 국민을 잃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원이나 옥토가 별로 없다. 핍박 피해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 변변한 것들이 있었겠는가? 척박한 땅에 나라 세우고 번영을 구가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 하나 있었다. 사람의 힘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스라엘이었기에 인재들은 꽃을 피웠다. 그들이 떠나고 있다. 전쟁 탓이기도 하지만 네타냐후 정부의 극우화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이미 이탈하고 있었다. 특히 의료, 과학기술 그리고 스타트업 인사가 많았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났고, 대학은 핵심 분야 교수 채용이 어렵다. 이대로면 (지식인의 유출로) 이스라엘은 소멸된다.” 200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테크니온공대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의 일갈이다.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인재들이 나라를 떠나기에 망할 수 있다는 그의 경고는 서늘하다. 전쟁 직후 격심했던 이탈 추세는 최근 다소 완화되긴 했다. 이주해 들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귀환 유대인 중에는 강경 보수파가 더 많다. 세속주의자들이 떠나고, 종교적 시온주의자들 많아지면 이스라엘은 결국 중세 국가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신정주의와 독재 행태를 보이는 중동 여느 국가들과 다를 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점이 이스라엘 국가 위기의 본질 아닐까?
셋째, 친구, 특히 미국을 잃고 있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 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거의 유일하게 지지해주는 미국과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청년들이 변수다. 지난달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나타난 20대 미국 젊은 층의 반네타냐후 여론이 눈길을 끈다. 지지 정당과 별 상관없이 대부분 네타냐후를 반대한다. 민주당 성향 청년 9%, 공화당 성향 청년 22%만 네타냐후를 지지하고 있다. Z세대 젊은이들은 이스라엘이 왜 미국의 영원한 친구여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확전하는 네타냐후 편을 굳이 들다가, 국제사회에서 미국도 도매금으로 반인도주의의 배후로 비난받는 데 분노한다. 어른들은 이스라엘 편이지만, 다음 세대가 주도할 10년 후 미국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마치 아랍의 젊은 군주들이 선대 국왕들의 팔레스타인 형제 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미국의 지지 없는 이스라엘의 안보는 상상하기 어렵다. 위기의 전조다.
피습 1년을 맞는 오늘, 네타냐후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미래의 적을 줄이고, 국민을 지키고, 친구를 얻을 방도다. 장기적으로 사람을 얻는 포석을 해야 한다. 이제 전쟁의 시간을 외교의 시간으로 바꿀 때다. 휴전 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인질도 살리고, 지난 1년 매일 평균 한 명씩 전사한 이스라엘 장병들의 생명도 지킨다. 기호지세로 계속 확전하면 세상을 다 이길 것 같지만 자칫 더 위험해질 수 있다. 9·11후 미국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렸을 때 국제사회는 미국의 압도적 힘을 확인하고 숨을 죽였다. 당시 중동 전문가들과 전략가들이 이라크 민간인 피해를 염려하며 경고했을 때 부시 정부는 듣지 않았다. 대서양 동맹국들의 반대에도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이 정의의 전쟁이며 신이 도우시니 이긴다고 했다. 과도한 자신감은 수렁으로 이끈다. 이라크에서 막대한 전비와 희생을 감수하고도 미국의 중동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지금 네타냐후가 참고해야 할 전쟁은 압승의 상징인 6일 전쟁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이어야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0/07/GF5SMDNX7VEXZK66VUJ5QP32X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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