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의 초고가 시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입력 2024.10.24. 00:10
요즘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마크 저커버그의 비싼 손목시계들이 소소한 화제다. 부자의 고가 손목시계는 낯선 일도 아니고 그리 가치 있는 뉴스도 아니다. 다만 마크 저커버그의 손목시계는 다르다. 그는 보통 부자들의 손목시계 컬렉션(이를테면 떼돈을 벌고 금덩어리 롤렉스를 사는 운동선수들)과는 다른 시계 애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른바 MZ 부자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 인물상이 어떤지는 2010년 작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온라인 사회에서 더 편안해하고, 실제 사회에 나타나는 외양에는 별 신경을 안 쓴다. 그를 상징하던 소품이 영화 속 마크 저커버그가 내내 입던 갭 후드 티셔츠다. 현실 속 마크 저커버그도 옷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그가 8년 전 공개한 옷장에는 똑같은 회색 반팔 티셔츠만 나란히 걸려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수집한 시계도 남다르다. 그의 시계들은 뻔한 유명 브랜드 시계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라면 가격과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고가 독립 브랜드 시계다. 그가 착용하고 등장한 F.P. 주른이나 드 베튠 같은 브랜드는 한국에 매장도 없어서 실물을 보기도 쉽지 않다. 그가 차고 나왔던 F.P. 주른 손목시계 중 하나는 출고가가 15만달러이니 현재 원화 시세로 2억원가량이지만 의미가 없다. 이 시계들은 이미 단종되어 장외 거래로 웃돈을 줘야만 살 수 있다. 거기 더해 이 시계들이 왜 좋은지 음미하려면 공부 수준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이제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시간도 안 맞고 고장도 잘 나고 비싸고 쓸모 없는 물건 아니냐. 왜 비싼 물건을 소개하며 위화감을 조성하느냐’ 이런 힐난의 논리는 ‘인간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육상 경기를 하느냐. 왜 육상을 소개해 보통 사람들의 운동 능력과 위화감을 조성하느냐’와 같다. 질문을 조금 바꾸면 훨씬 생산적인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왜 비효율적인 기계식 시계 기술이 아직까지 고가 취미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기계식 손목시계는 이제 금속 정밀 가공 기술과 결부된 별도의 부르주아적 취미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유럽 국가, 특히 스위스가 20세기 후반부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 중 하나가 AHCI, ‘독립 시계학 아카데미’라는 민간 기관이다. 전 세계의 독립 시계공들이 이 단체에 등록되어 각자의 시계 기술을 나눈다. 여기서 두각을 드러내면 투자자의 후원을 받아 자기 브랜드까지 만들게 된다. F.P. 주른 역시 이 단체의 오랜 회원이었다가 유명해진 경우다.
마크 저커버그는 세상의 하고많은 취미 중 하필 이 취미에 빠진 듯 보인다. 그 계기는 올해 3월의 어느 결혼식이었다고 여겨진다. 마크 저커버그 부부는 인도 부자 아난트 암바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저커버그 부부가 암바니의 리처드 밀 손목시계에 관심을 보인 영상이 남아 있다. “나는 시계에 전혀 관심을 가진 적이 없지만 시계는 쿨하군요.” 영상 속 마크 저커버그의 말이다.
매일 똑같은 티셔츠만 입으며 소프트웨어 제국을 쌓아올린 마크 저커버그가 이렇게 보통 사람이 되는 걸까? 하긴 그도 올해로 40세다. 결혼도 잘했고 아이도 있다. 그는 최근 아내와 아이를 위해 포르셰 카이엔을 미니밴으로 개조한 뒤 그걸 자기 SNS에 올리기도 했다. 평생 패션이나 스타일처럼 표피적인 인간 세계의 물건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마크 저커버그도 나이가 든 걸까. 기계식 손목시계처럼 구시대적 귀금속에 눈을 뜨는 식으로 사람의 기호가 보수화되는 걸까.
혹은 저커버그가 뭔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메타는 증강 현실을 띄우는 안경형 웨어러블 디바이스 오리온2를 출시했다. 앱 소프트웨어와 인간이 걸치는 디바이스는 다르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흉측한 UI와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감수하며 페이스북을 쓴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그게 안 된다. 비합리성을 포함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마음을 사로잡아야 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가 손목시계 같은 물건에 신경을 쓰면 보통 사람들 마음을 이해할까? 그 이해가 신제품 성공에 반영될까? 이걸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 같다.
마크 저커버그 |
소셜 네트워크 |
갭 후드 티셔츠 |
F.P. 주른 |
드 베튠 |
아난트 암바니 |
리처드 밀 |
포르셰 카이엔 |
오리온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0/24/YT74KRUWVJHENL2ZM2PMEN4KZ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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