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12.01. 21:04 업데이트 2024.12.01. 23:13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였던 세골렌 루아얄과 결혼하지 않고 25년을 함께 살았다. 올랑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엘리제궁에 함께 들어간 이는 새 연인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통령 재임 중 배우 출신 쥘리 가예와 염문을 뿌렸다. 올랑드는 자녀 넷을 두었는데 모두 루아얄이 낳았다. 프랑스 신생아 열에 여섯은 이처럼 결혼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난다.
▶사회 분위기를 통째로 바꾼 ‘68혁명’ 전엔 프랑스에서도 “자식은 결혼해서 낳아야 한다”는 통념이 강했다. 이런 제약이 임신과 출산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합계 출산율이 1.76명까지 떨어지자 1999년 팍스(PACS·시민연대계약)를 도입했다.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면 사실혼으로 인정해 세제 혜택과 가족 수당 등을 지급했다. 덕분에 프랑스 전역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커졌고 태어난 아이도 어른들의 손가락질이나 사회적 냉대를 받지 않고 자란다.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도 어느새 같은 길에 들어서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청춘 남녀에게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낳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열에 넷이 “그렇다”고 답했다. 10년 전 같은 물음에는 30%가 긍정하는 대답을 했는데 그 사이 10%포인트 넘게 늘었다. 방송인 사유리씨가 정자를 기증받아 엄마가 되고, 10대 청소년 부모의 애환을 다룬 TV 예능 ‘고딩 엄빠’나 영화 ‘과속스캔들’이 호응을 얻는 것도 이런 인식 변화를 담고 있다.
▶아빠가 된 배우 정우성씨가 “아빠 노릇은 충실히 하겠다”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쟁을 불렀다. “자식이 생겼으니 아기 엄마와 결혼하라”는 의견과 “자식 태어난 것과 부부가 되는 것은 별개 사안”이란 견해가 맞서고 있다. 그 와중에 저출산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나경원 의원이 프랑스의 팍스와 유사한 ‘등록 동거혼’ 입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합계 출산율이 0.7명 아래로 떨어지며 국가 소멸까지 걱정하게 된 만큼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다양한 동거 형태를 인정하는 팍스와 “함께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정우성씨 사례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동거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출생도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태어난 아기를 소중히 보호하고 키우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마땅히 져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다만 팍스 형태로 사는 프랑스 커플의 절반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결국 법적 부부가 되기로 결심한다는 사실도 함께 알았으면 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
세골렌 루아얄 |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 |
쥘리 가예 |
사유리 |
정우성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12/01/AUTV3LE3HZE7FKCQTYGVA73FK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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