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입력 2024.12.01. 23:52
미역 한 타래
미역에는 귀가 있다
심해의 소리까지 들었다 놓는 귀가 있어
바람이 심할 때마다 몸은
또 다른 몸을 때리며 진저리 친다
흔들리는 귀는
가끔 바닥에
가끔은 허공에
또 물속에 귓바퀴를 대고
몇 년을 살아낸다
소금기를 귓속에 묻으며
귀가 서서히 멀어지는 동안
바다 쪽으로 이마를 댄 어떤 집들은
처마에 가지런히 미역을 널어 말리며
서걱서걱 마른 몸으로 겨울을 난다
-김창균(1966-)
미역귀는 미역의 윗동 부분이다. 두툼한 주름이 잔뜩 잡힌 모양새다. 시인은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미역, 특히 이 미역귀를 어민들의 삶에 빗댄다. 거센 파도와 몰아치는 해풍 속에서 자라는 미역귀를 통해 어촌 사람들의 끈덕지고 질긴 삶의 의지를 노래한다. 한 타래의 미역이 미역귀를, 그 귓바퀴를 바닷물 속에 대고 산다고 표현한 것은 험한 바다를 생계를 위한 벌이터로 살아가는 이들이 크고 밝은 귀라도 지닌 듯이 심해 곳곳을 속속들이 내리꿰고 있음을 강조한 것일 테다. 미역귀의 귓속에 소금기가 가득 배어 있다는 진술도 그만큼 땀을 흘리며 고되게 살아가고 있음을 부각한 것으로 이해된다.
김창균 시인의 시편에는 고성 앞바다가 넘실거린다. 시인은 ‘엄동(嚴冬)’이라는 시에서 “대게가 살을 올리는 그믐 무렵이다/ 콤콤하게 삭은 가자미식해의 지느러미 쪽을 먹는/ 캄캄한 밤이다”라고 썼다. 겨울이 되면 대설이 내려 무릎 높이쯤은 됨직하게 쌓이는, 미시령 아래 마을에 산집을 짓고서 시심의 등불을 켜놓고 있을 시인이 생각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2/01/QIC2LZFZVNDH5NDECVZXTPMTFQ/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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