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아웃룩]
김철중 기자
입력 2024.12.03. 23:57 업데이트 2024.12.04. 07:22
"부장님~" 소싯적 직함 불러주면 좋은 기억 떠올라 뇌기능 활성화
추억은 '회춘 호르몬' 분비 늘려… 일본엔 회상 돕는 전문가도 있어
14가지 치매 발병 요인 중 최악은 난청과 콜레스테롤… 예방이 중요
“부장님~” “교감 선생님~” “공장장님~” “감독님~”.
치매 환자나 인지 기능이 떨어진 어르신이 많이 입원해 있는 지방의 한 재활요양병원에서는 환자들을 부를 때 이름 대신에 소싯적 직함으로 부른다. 그러면 평소에 처져 있던 환자들이 예전 한창 일할 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활발히 움직인다는 것이다. 직함을 불러주면 과거 자신의 직함에 따른 책임감도 떠올라, 그날 수행할 인지 행동 치료도 잘 따른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라떼는 말이야~’가 뇌 활성제
과거의 좋은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뇌 혈류를 증가시켜서, 뇌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효과가 밝혀지면서 추억 회상이 인지 기능 개선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가 잠자는 뇌를 깨우는 뇌 기능 활성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회상 효과를 연구하는 회상요법학회가 설립되어 2000년대부터 치매 예방과 관리 목적으로 회상 요법을 요양원, 요양병원 중심으로 활발히 보급했다. 최근에는 인지 기능이 떨어진 일반 고령자에도 적용하고 있다. 동네 데이케어센터는 어르신이 삼삼오오 모여서 과거를 회상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회상 요법 프로그램으로는 여럿이 모여 추억의 사진이나 물품 보며 얘기하기 잘나가던 시절의 직함 불러주고 그 시절 주제로 수다 떨기 예전에 즐기던 음악 같이 모여서 듣고 부르기 아이들 어렸을 적 찍은 비디오 보며 대화하기 힘든 젊은 시절을 극복한 경험 나누기 추억이 서린 곳으로 여행하기 등 다양하다.
일본회상요법학회는 어르신 대상으로 회상을 잘 이끄는 생활지도자를 심리 요법 회상사라고 명하고, 일정 기간 교육을 시켜서 자격증을 부여하며 양성하고 있다. 3시간 단기 교육으로 회상 요법을 이끄는 기초 과정 회상사 코스도 운영한다. 그만큼 회상 요법 보급을 확대하여 많은 어르신에게 활력을 주고, 인지 기능을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나이 들어 뇌가 퇴화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체내 DHEA(di hydro epiandro sterone) 부족이 꼽힌다. 본래 DHEA는 뇌와 부신에서 만들어져 스트레스에 손상받은 세포조직을 회복시켜 준다. DHEA가 부족하면 피부와 근육이 한꺼번에 늙기에, DHEA를 늘리는 것을 ‘회춘 호르몬’ 늘리기라고 부른다.
일본과 미국에서 나오는 연구들에 따르면,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잘나갔던 소싯적 시절을 회상하면, DHEA 분비가 활발하게 촉진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에 혼자 사는 지혜’라는 책을 쓴 일본의 정신과 의사 호사카 다카시는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한창 연애할 때 자주 갔던 관광지의 펜션에 다시 가게 했더니 DHEA 분비량이 확실히 증가했는 실험 결과가 있다”며 “나이 든 사람들이 옛날 기억에만 빠져 있다고 노인티 낸다고 뭐라고 그러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즐거운 회상이 뇌를 활성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해리(신경과 전문의) 보바스기념병원 원장은 “회상으로 즐거웠던 시절 얘기를 하다 보면 마치 어르신들이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활기찬 기운이 느껴지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되찾는다”며 “다만 괴롭고 나쁜 기억을 불러오면, 힘들어 할 수 있으니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고 타인의 사생활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면서 쌓은 좋은 추억은 노년을 활기차게 만드는 재료다. 인생은 결국 좋은 추억 쌓기인 셈이다.
◇치매 예방 가능성 커졌다
노년기 치매 발생 원인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최근 여러 복합 연구로 치매 발병 위험 요인이 속속 밝혀지면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논문 영향력 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의학 저널 랜싯(Lancet)의 치매 위원회는 3~4년마다 치매 발생 위험 요인을 분석하여 그 항목을 발표한다. 즉 이런 위험 요인을 잘 관리하면 치매 발병을 줄이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위원회에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치매 전문가, 의사, 학자 27명이 모여 있다.
랜싯 치매 위원위가 2017년 위험 요인 항목을 처음 발표했을 때 위험 요인은 낮은 교육 수준, 난청, 고혈압, 비만,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신체 활동 부족, 당뇨병 등 9가지였다. 그러다 2020년에는 과음, 머리 외상, 대기오염을 추가해 모두 12가지로 늘렸다. 그러면서 이 12가지 항목을 잘 관리하면 치매 유병률을 40%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2024년 발표에는 치매 발병 위험 요인으로 높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와 시력 상실을 추가해 항목을 14가지로 늘렸다. 치매 유병률 감소 폭도 늘려서, 치매 발생을 45%까지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즉 14가지 위험 요인을 잘 관리하면, 치매를 절반 가까이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그래픽 참조>. 치매 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가 2050년에는 현재의 3배 수준인 1억53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위험 요인을 치매 발생에 기여하는 비율이 높은 순으로 열거하면, 청력 손실(7%), 높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7%), 노년기 사회적 고립(5%), 청년기 저(低)학습(5%), 우울증(3%), 외상성 뇌손상(3%), 공기 오염(3%) 등이다. 운동 부족, 당뇨병, 흡연, 고혈압, 시력 상실 등은 각각 2%로 같았다.
박건우(전 치매학회 이사장) 고려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14가지 위험 요인은 모든 종류의 치매에 해당한다”며 “그 가짓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노력으로 치매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커졌다는 의미이기에 뚜렷한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전 연령대가 치매 발병 위험을 줄이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2/03/XMKWFZRXUJBQ3GB3YYXWDUES3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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