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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딥페이크는 이미 오염됐어… 다른 단어 없나?

장강명 소설가
입력 2024.12.23. 23:59 업데이트 2024.12.24. 00:43

네카팡, 어감 나빠진 딥페이크 버리고 '리캐스팅 광고' 선점
연예인 대신 가족·친구 얼굴 심어 고리대출·게임 CF 등 제작
볼 때마다 몇 푼씩 수익분배도… 친구가 불법대출 권하는 세상

일러스트=이철원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7회 #맞춤형 CF 모델

한때 ‘CF 퀸’이라는 말이 있었다. 상품 판매 효과가 뛰어나 광고주가 선호하기 때문에 여러 CF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을 가리켰다.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그런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2020년대 후반 한국의 대기업 네카팡이 ‘리캐스팅’ 기술을 상용화하며 사라졌다.

리캐스팅은 사실 어감이 나빠진 딥페이크라는 단어를 대체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했다. 네카팡의 진짜 혁신은 아무나 합성을 하지 못하게 하고, 원본과 합성을 완벽하게 구분하고, 합성물의 제작자를 금세 찾아내는 등의 안전장치 강화에 있었다. 아마추어 합성물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겨우 합성을 영상 예술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네카팡은 영화나 드라마 제작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을 노렸다. 광고 시장이었다. 호감 가는 사람, 권위자로 보이는 사람이 물건을 사라고 권하는 게 많은 CF의 본질이다. 그래서 광고 회사들은 거액을 들여 연예인 선호도 조사를 벌인다. 한데 소비자의 스마트폰 저장 공간이나 웹서핑 기록을 분석하면 그가 누구에게 호감을 품는지, 누구를 권위자로 인정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주 들여다본 사진이나 동영상 속 얼굴이 누구 것인지 파악하고 디지털 초상권을 사서 CF에 합성하면 어떨까?

네카팡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각종 서비스 무료 쿠폰을 뿌리면서 이용자를 모집했다. ‘리캐스팅 CF’를 보기만 해도 시청자는 포인트를 받았고, 그가 본 CF 영상에 합성된 모델도 소액을 벌었다. 상품을 사면 구매자는 일정 비율로 돈을 돌려받았고, 모델로 선정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네카팡의 홍보 문구는 이랬다. ‘CF 보면서 할인받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후원하자! 보기만 해도 포인트가 팡팡!’ 이후 CF 퀸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100만명이 같은 내용의 광고를 봐도 영상 속 모델은 모두 달랐다.

얼마 뒤 네카팡의 홍보 문구는 이렇게 바뀌었다. ‘나도 CF 스타! 온 가족이 다 네카팡 모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보다 가족이나 친구가 훨씬 효과적이다. 가족과 친구의 얼굴 이미지도 휴대폰 저장장치와 소셜미디어 기록에서 추출할 수 있다. 무료 쿠폰을 뿌리고 지급액을 높이겠다고 하니 너도 나도 소셜미디어 사용 기록과 초상권을 제공하겠다고 동의했다.

키우는 반려견이 CF 영상에 나와 먹고 싶은 간식을 말할 때 거부하는 견주는 없었다. 노인들은 손자 손녀가 권하는 제품은 뭐든 사들였다. ‘썸’ 타는 이성이 어떤 향수나 옷, 차량을 칭찬하면 젊은 남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제품을 이야기하면 효과가 엄청났다.

어제 네가 광고에서 치약 추천하더라. 주문했어.

나한테 50원쯤 들어왔겠네. 치약 말고 TV 같은 거 살 때 잘 부탁해.

이런 대화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리캐스팅 CF의 수익 분배 시스템이 빈부 격차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왔다.

“의장님, 오늘 신문 칼럼 보셨나요? 부자들은 광고에 자기 얼굴을 잘 허락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가끔 비싼 물건을 사면 친구들이 덕을 본다, 그런데 저소득층은 정반대 상황이라고 하네요.”

‘네카팡 온라인-이메리 의장이 말한다’ 프로그램 사회자를 맡은 아나운서가 물었다. 최고경영자가 현안에 직접 답하는 네카팡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죠. 리캐스팅 CF로 손해 보는 사람이 누군가요? 전문 CF 모델들뿐이에요. 나머지 사람은 모두 이익 아닌가요? 자기 얼굴을 빌려주는 거나 지인 얼굴을 광고에서 보는 것 모두 당사자들이 동의한 사항이고, 언제든 쉽게 탈퇴할 수 있어요.”

“의장님은 지인이 생뚱맞은 제품을 광고해도 괜찮으세요?”

“저는 추가 금액을 내고 광고를 아예 안 보는데, 어쨌든 이참에 시스템을 다듬으려 해요. 지인 얼굴이 CF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불편한 상품들이 있긴 하죠. 그런 상품을 광고하는 기업에 부담을 더 지우려고요. 광고주들이 그렇게 더 낸 돈은 이용자에게 돌려주고요.”

“그런 광고에 얼굴을 빌려줄지 말지는 각자 정하고요?”

“고객은 늘 옳다는 게 제 경영 철학이에요.”

리캐스팅 CF는 패키지-A, 패키지-B, 패키지-C, 하는 식으로 세분화됐다. 한 푼이 아쉬운 저소득층과 청년층은 가장 보수가 높은 패키지-Z를 선택했고, 자기 친구들이 대출과 온라인 게임, 건강보조식품을 광고하는 영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봤다. 그즈음 한 시사프로그램에 나온 20대 여성은 “리캐스팅 CF로 용돈을 번다”고 고백했다.

“제 친구들은 전부 가입했어요. 서로 도와야죠. 저는 친구한테 암호 화폐 권하고, 친구는 저한테 전자 담배 권해요. 리캐스팅 CF가 인간관계를 착취한다고 떠드는 인문학 꼰대들보다 네카팡이 훨씬 고마운데요. 몇 푼이라도 생계에 보탬이 되니까요.”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2/23/FKF7GWSGX5BKTPCWRJEYPU5TB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