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원실장
입력 2024.12.26. 23:58
미래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자원이 부족해지고 인구가 지나치게 증가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패신저스(Passengers)’에 등장하는 우주선 정원은 미래의 정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지구의 귀중한 생물 자원 유전체를 모아 놓은 캡슐들과 함께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정원의 중심에는 아름드리 대왕참나무가 상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다른 예로, 과학자들과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공상 과학(SF) 영화 ‘마션(The Martian)’은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이 연구 기지를 감자 재배 온실로 개조해 생존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식량으로 가져온 감자에서 싹을 얻고, 연구 기지의 온도 제어 시스템과 태양광 패널, 인공 조명을 활용해 화성의 극한 환경에서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척박한 토양은 자신의 배설물로 비옥하게 만들었고, 물은 로켓 연료에서 수소를 추출해 화학반응으로 얻어냈다.
정원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영화들은 1990년대 미국에서 진행된 ‘생물권 2(Biosphere 2)’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실험은 지구 생태계를 ‘생물권 1’로 정의하고, 미래에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인공 생태계인 ‘생물권 2’ 환경을 연구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 프로젝트는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인공적으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식물 재배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우주 환경에서 센서 수백 개를 갖춘 자동화 시스템을 이용해 상추, 로메인, 고추 등 다양한 채소 재배에 성공하며 우주 환경에서 미래 정원의 가능성을 탐구 중이다.
이 같은 연구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급격한 도시화와 기후변화로 지구 환경이 위기에 처한 지금, 스마트 기술은 정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드론과 로봇, 위치 정보 시스템(GPS),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각종 센서 기술 등의 발전 덕분이다.
스마트 기술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잔디 깎기 로봇은 사람 없이도 정원의 패턴을 학습해 작업을 수행하면서 배터리가 부족하면 스스로 충전기로 이동하기까지 한다. 에든버러 대학교 정보학부에서 개발한 ‘트림봇(Trimbot)’은 3D 맵핑과 카메라 기술을 활용해 나뭇가지를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다. 최근에는 머신러닝으로 수십만 개의 식물 샘플을 학습해 잡초를 제거하는 로봇들도 등장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위위안탄(玉渊潭) 공원은 로봇 활용에 발 벗고 나섰다. 로봇 17대가 호수의 부유물 청소, 녹지 관리, 생태 모니터링, 교육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며 정원 관리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보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스마트 기술을 정원 관리에 적용한 사례도 있다. 시카고 식물원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스마트 가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정원 곳곳에 설치된 센서가 온도, 습도, 조도, 토양 수분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컴퓨터로 전송하면, 정원사가 아침에 출근해 그날의 정원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 시스템은 사람이 육안으로 알아채기 전에 싹이 트거나 꽃이 피려는 미세한 움직임을 미리 감지한다. 예를 들어, 이른 봄 크로커스는 토양 온도를 두고 소란을 피우는 듯한 신호를 보내고, 수선화는 마치 동시에 주목받기를 원하는 듯한 패턴을 나타낸다.
이처럼 고도의 인공지능은 정원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보완하며, 더욱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지는 날씨와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전 세계 도시 정원의 핵심 과제는 스마트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접목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스마트 기술은 정원을 즐기는 방식에도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증강 현실(AR)과 가상 현실(VR)은 실제 정원에 디지털 정보와 영상을 입혀 환상적인 정원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전 세계 식물원 12곳에서 동시에 열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Seeing the Invisible)’ 전시는 디지털 기술과 세계적인 예술 작품을 접목해 정원을 독특한 야외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정원에서 스마트폰 앱을 실행하면 정원 곳곳에 숨겨진 작품이 눈앞에 보이고, 소리를 들으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미래의 정원은 스마트 기술과 융합돼 빛, 소리, 향기, 촉감 등 자연이 주는 오감을 최대한 살리는 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마트 정원은 첨단 기술의 힘과 인간의 감성이 결합될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고 자신의 철학과 감정을 담는 창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정원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기술로 증강될 수 있지만, 인간의 감각과 마음 없이는 온전히 완성될 수 없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수많은 종류의 꽃과 잎, 열매, 나무를 선택하며 정원을 완성해 나간다.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영감과 깨달음을 얻고, 몸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한다.
정원을 돌보는 인간의 따뜻한 손길을 과연 어떤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정원의 풍경,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햇살과 바람, 그리고 해마다 더욱더 성숙해지는 정원의 변화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정원을 직접 가꾸는 사람의 고유한 경험이다. 또한 정원은 정답이 있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며 보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호 작용의 공간이다. 이러한 정원의 본질을 이해하고 가꿀 수 있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일 수밖에 없다.
패신저스 |
마션 |
대왕참나무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2/26/PQ2QL7VXDJHTPPT4QYMUKJMRM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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