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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파나마 운하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12.27. 20:28 업데이트 2024.12.28. 00:12

 

일러스트=이철원


인류 최초의 운하는 기원전 5~6세기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가 완성한 고대 수에즈 운하였다.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해 나일강 하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홍해 너머 메마른 아랍 땅으로 실어 날랐다. 중국도 7세기 수나라 때, 강남 곡창지대와 수도 장안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건설했다.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지금의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1869년 완공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도 그가 착공했다. 그러나 고작 길이 80㎞ 지협을 끝내 뚫지 못하고 미국에 넘겼다. 마침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빼앗은 필리핀 해군기지에 함대를 신속하게 보내야 했던 미국이 반색하고 뛰어들어 1914년 완공했다.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 공사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인부 2만2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말라리아였다. 개미를 매개로 알고 엉뚱한 데 헛심을 썼다. 미국은 모기가 원흉이란 사실을 밝혀내 유충이 사는 물웅덩이를 없앴다. 가톨릭교회의 성수(聖水) 그릇조차 금지할 만큼 철저히 방역했다. 운하 완공 후 파나맥스급(級)이란 어휘가 탄생했다. 폭 32m(현재는 49m로 확장)인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배란 뜻이다. 그보다 큰 배는 지금도 남미 대륙과 남극 사이, 남위 60도에 있는 드레이크 해협으로 우회한다. 엄청난 유속과 악천후로 악명 높아 ‘절규하는 60도’로 불릴 만큼 지구에서 가장 거친 바다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손에 넣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10년 공사 기간 중 6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콜롬비아 지배를 받던 파나마의 독립도 지원했다. 그렇게 손에 넣은 운하였는데 1977년 카터 행정부가 양도 조약을 체결해 파나마에 넘겼다. 미국은 1999년 운하 양도식 행사에 정부 고위 관료를 보내지 않았을 만큼 이를 애석해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 통행료를 인하하지 않을 경우 운하 반환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핑계이고 속내는 남미 국가들에 영향력을 확대해 온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라고 한다. 19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영국 영향력 아래 있던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은 프랑스·이스라엘과 손잡고 2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의 반대로 철수하며 수에즈 운하에 대한 영향력을 영구 상실했다. 역사가들은 유럽 패권 시대의 종언과 미소(美蘇)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했다. 이제는 파나마 운하가 미·중 패권 다툼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리우스 1세
페르디낭 드 레셉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12/27/FXJHIF6G6FB7ZHS56VSXZKVRO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