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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은식의 보수주의자의 Rock] 英 '오아시스'의 리더는 보수를 존경했다

박은식 내과 전문의
입력 2025.03.14. 00:12 업데이트 2025.03.14. 05:20

90년대 세계적 록그룹 오아시스 재결합
노동자 계급 출신 리더 노엘, '보수' 자처
불우한 과거 탓하는 '증오의 노래' 지양
전통을 적폐로 몰아 파괴하면 혼란만 가중
4집 앨범 제목은 '거인들의 어깨 덕분…'
과거 긍정하고 기적 만든 전통 존중해야


노엘(Noel)과 리엄(Liam) 형제의 갈등으로 해체된 세계적인 록밴드 오아시스(Oasis)가 2024년 여름 재결합을 선언했다. 1990년대 문화예술의 아이콘이었던 오아시스의 부활에 영국 전역에서 축제 분위기가 펼쳐졌다. 오아시스의 앨범은 물론이고 라이벌이었던 블러(Blur)의 앨범과 1990년대 패션 아이템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어릴 때부터 오아시스 팬이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들의 CD를 꺼내 들었다. 넷플릭스에서 오아시스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봤다. 보수주의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이었기 때문일까. 음악도 음악이지만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가 만든 곡의 가사들과 언행에 담긴 보수주의적 태도에 눈길이 갔다. 그건 ‘과거에 대한 긍정’과 ‘전통에 대한 존중’이다.

노엘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의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에게 매일같이 폭행을 당했다. 심지어 거리에서 심하게 맞다가 기절한 뒤 쏟아지는 비를 맞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통증에 깨어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의 이런 경험은 오아시스의 데뷔 앨범 히트곡 ‘Live Forever’의 가사에 담겨있다. 그럼에도 노엘은 ‘부자들이 보지 못한 걸 본 나는 영원히 살 거다’라며 밝은 멜로디로 불러냈다.

노엘은 한 인터뷰에서 가정 폭행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아버지가 날 때렸을 때 음악적 재능을 때려 박은 걸지도 모르죠. 오히려 그 덕에 방에 숨어 기타를 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게 작곡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불우한 과거를 탓하며 누군가를 증오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런 일이 삶에 영향을 주도록 하면 안 되죠. 그러면 평생 동안 그 일에 끌려다니게 되지 않을까요. 난 가진 게 없었지만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어요.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게 만드는 매일 아침이 좋았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은 ‘Morning Glory’이고 대표곡은 ‘Don’t look back in anger’다. 이 노래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며 1990년대를 상징하는 대표곡이 됐고, 오아시스에 전성기를 안겨줬다. 다섯 번째 앨범의 히트곡인 ‘Stop crying your heart out’의 가사에는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는 없어, 두려워하지 말고 필요한 걸 챙기고 웃으며 네 갈 길을 가렴’이라는 내용을 담아 과거에 얽매여 힘들어하는 이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2000년대가 되어 록음악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힙합과 전자음악(EDM)이 큰 인기를 끌었을 때였다. 이런 추세가 반영돼 영국 최대 음악 축제인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힙합 아이콘 제이지(Jay-Z)가 헤드라이너로 정해졌다. 이에 노엘은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기타 악기의 전통 위에 세워진 음악 축제”라며 비판했다. 록스타와 전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노엘은 항상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등의 대선배들이 정립한 록의 전통에 존경심을 드러내왔다. 4집 앨범의 제목을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로 지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뉴턴이 선배 과학자들의 업적을 칭송한 명언인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에서 따온 표현이다.

보수주의는 정치 영역에서도 중요하다. 보수주의 철학의 시발점이 된 영국의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저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에서 당대 지식인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되던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다. 버크는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자기 확신에 젖어 전통을 적폐로 몰고, 제도의 급진적인 변화와 파괴로 혼란만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실제 프랑스 혁명 당시 기득권층은 거의 다 혁명 정부의 눈 밖에 나 처형됐고, 취약 계층은 혁명 정부의 반(反)시장적 정책으로 산업이 망가져 대다수가 굶어 죽었다. 결국 새로운 독재자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해 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이후 프랑스의 국력이 약해지며 유럽의 패권은 영국으로 넘어갔다. 점진적 개선으로 극단적 갈등을 막고 국가의 영속성을 추구한 버크의 보수주의가 옳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과거를 부정하려 한다. 진보 진영은 비리와 당내 세력 다툼 탓에 자기네 정당 소속 대통령이던 김대중과 노무현을 탈당시키며 함께한 역사를 지워버리려 했다. 그들은 보수 진영이 만들어온 역사는 모두 적폐라며 청산하자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문열 작가가 정의한 것처럼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아야’ 할 보수 진영도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사진을 당사에서 치워버렸고, 탄핵 소추를 당한 현직 대통령을 탈당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가 지운다고 지워질까? 오히려 그 과거를 왜 지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붙으며 더욱 선명하게 존재해 현재 사람들을 괴롭히고 속박하기 마련이다. 그 정치인들의 과거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증명할 흠결만 부각되고 이뤄왔던 업적들은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거의 흠결들은 끝도 없는 정쟁의 도구가 된다. 그러니 다가오는 미래를 힘을 합쳐 대비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정치의 모습이지 않나.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을 축적해 전통을 만들어간 나라들이 결국 번영해 세계를 이끌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노엘처럼 우리의 과거를 긍정하고 기적을 만든 전통을 존중하자.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며 멋진 아침이 펼쳐지길 기대하자. 나는 먼저 보수주의 철학을 몸소 보여준 오아시스의 내한 공연 티켓팅에 성공해 ‘Morning Glory’의 수록곡 ‘Don’t look back in anger’를 ‘떼창’하길 기대해보겠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3/14/UZIQPZZPORF2BFXR3VZQEB2LN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