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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다크 패턴'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5.04.17. 21:12 업데이트 2025.04.17. 23:41

일러스트=이철원


항공권 구매 사이트에서 제일 싼 티켓을 찾아내 결제하려고 보니, 특정 신용카드만 결제가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귀찮기도하고 시간이 아까워 결국 기존 신용카드로 살 수 있는 더 비싼 항공권을 구입하게 됐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가성비 좋은 호텔을 힘들게 찾아 예약하려고 보면 수수료, 세금 등이 붙어 처음 제시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가격이 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절 임박’ 메시지가 뜨면, 조바심이 일며 급히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된다. 구매 대상을 찾고 있는데, ‘오늘 420명이 주문했어요’ ‘이 상품을 300명이 보고 있어요’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으면 홀린 듯 결제 코너로 직행하게 되기도 한다. 서비스 한 달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 해지하려는데 사이트에서 해지 코너를 찾을 수가 없다. 겨우 해지 코너를 찾았지만 ‘해지’ 여부를 묻지 않고 ‘내가 받고 있는 혜택을 포기하겠느냐’고 물어봐 주춤하게 만든다.

▶이상은 눈속임 상술을 뜻하는 ‘다크 패턴(Dark Pattern)’의 사례들이다. 가격 비교 방해, 숨겨진 비용, 거짓 희소성, 거짓 긴급성, 어려운 해지 등이 모두 다크 패턴이다. 소비자가 다크 패턴 함정에 빠지면 충동 구매 같은 비합리적 소비를 하게 된다. 한국소비자원이 온라인 쇼핑몰 114곳을 조사한 결과, 쇼핑몰당 평균 5.6개의 다크 패턴을 사용하고 있었다. 최근 서울시가 온라인 구독 서비스 13곳을 조사한 결과, 13곳 모두에 해지를 어렵게 하는 다크 패턴이 있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되면서 다크 패턴의 폐해가 심해지자, 세계 각국이 규제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선 금지 대상 다크 패턴 유형을 정한 뒤 기업이 이를 어기면 매출액에 비례해 벌금을 매기는 등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자상거래법 개정을 통해 올 2월부터 다크 패턴 규제에 동참했지만, 과태료가 최대 500만원에 불과해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있다.

▶2010년 ‘다크 패턴’이란 말을 처음 만든 영국인 컨설턴트는 다크 패턴이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편향된 생각을 하며 그런 의사 결정을 내린다’는 인지과학의 연구 결과를 기업들이 악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저학력·저소득자·노년층이 다크 패턴 취약층이라면서,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다크 패턴의 개별화·맞춤형 설계가 훨씬 더 쉬워졌다고 우려한다. 다크 패턴에 당하지 않을 간단한 해법은 없다. 다크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꼼꼼하게 살피는 수밖에 없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4/17/JHFIDSKXXVCZHB4TG2QAYQ6PE4/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