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현 박사·연세대 중국연구원
입력 2025.06.03. 00:50
전전긍긍(戰戰兢兢)
싸울 전 (戰), 떨릴 긍 (兢)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한다는 뜻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을 끊고, 외국 유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혔어요. 하버드대가 반(反)유대주의를 방조하고 있다는 이유로 압박을 넣은 것이었죠. 정부 조치는 연방 법원의 시행 금지 명령으로 잠시 제동이 걸렸지만, 여전히 유학생들은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고 있을 겁니다. 학생들의 이런 심정을 전전긍긍(戰戰兢兢)이라는 고사성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싸울 전(戰)’과 ‘떨릴 긍(兢)‘ 자를 쓰지요. ’싸울 전(戰)’ 자엔 ‘두려워서 떨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전전긍긍은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조심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자성어는 기원전 11세기부터 3세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알려진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와 관련 있습니다. 주나라 유왕(幽王)은 사치와 향락을 즐겼고 폭정을 휘두른 인물이었어요. 한번은 유왕이 사랑하는 여인 포사(褒姒)를 웃게 하려고 제후들을 골탕 먹이기로 합니다. 유왕은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거짓으로 봉화를 올렸어요. 이를 본 제후국에선 주나라를 돕기 위해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곧 장난이었음을 알고 허탈하게 돌아갔지요. 이후에도 유왕의 봉홧불 놀이는 몇 번 더 반복됐습니다. 얼마 후엔 적군이 진짜 공격해 들어와서 봉홧불을 피웠지만, 이미 여러 번 속은 제후들은 이번에도 장난일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았어요.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신뢰를 잃은 유왕은 결국 적국에 살해당했고 주나라는 멸망합니다.
‘전전긍긍’이라는 표현은 유교 경전이자 중국 최초 시가집인 ‘시경’에 실린 시 한 구절에서 나왔습니다. 유왕의 시대를 풍자한 대목입니다.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는 것이 깊은 연못을 마주한 듯하고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유왕의 포악함 앞에서 백성들은 매일 불안에 떨었는데, 그들의 심정이 마치 깊은 연못 앞에 서 있다가 순간의 방심으로 물에 빠질까 걱정하고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조마조마하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전전긍긍과 비슷한 말로 노심초사(勞心焦思)와 좌불안석(坐不安席)이 있습니다. 노심초사는 몹시 마음을 쓰며[勞心] 애를 태운다[焦思]는 뜻입니다. 좌불안석은 앉아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말로,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스러워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을 표현하지요.
미국 대통령이 유학생들을 쫓아내려는 현 상황과 비슷한 일이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전국 시대 진(秦)나라에선 타국 출신 관리들을 모조리 국외로 내보내라는 왕령이 내려졌어요. 그러자 초(楚)나라 출신으로 진나라에서 관리를 하고 있던 이사(李斯)가 왕령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따지는 글을 써서 왕에게 올렸어요.
글의 핵심은 ‘유능한 인재를 국외로 유출하는 건 오히려 주변국을 돕는 어리석은 일이니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또 ‘큰 산은 작은 흙더미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거대함을 이룰 수 있었고, 넓은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다’라고도 했습니다. 비판을 받아들여 정책을 철회한 진나라의 왕은 결국 천하를 통일하지요. 그가 바로 진시황이었습니다. 진정한 강자는 배척이 아닌 수용을 선택합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ie/2025/06/03/L5N6U2QPNNDL3IEEC4JQHEOC4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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