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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창·낫에 화염방사기까지… 강력 범죄 저지르는 '앵그리 노인'

갈수록 잔인해지는 노인 범죄
고유찬 기자 구동완 기자 이민경 기자 안태민 기자
입력 2025.06.05. 01:48

일러스트=이철원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던 80대 노인이 작년 1월 구속됐다. 다른 주민들이 “경로당 실내에서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셔 견딜 수 없다”고 해 쫓겨났다. 불만을 품은 그는 이웃 노인의 눈에 살충제 스프레이를 뿌리고, 스프레이통으로 폭행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노인은 다른 피해자 2명의 집에 찾아가서 망치를 휘두르기도 했다. 같은 해 3월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70대 노인은 50대 지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늙은 놈’이라며 무시하는 말을 듣자 화가 나 다투다가 살인 사건으로 번졌다. 지난 1월 2심 재판부는 이 노인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강력 범죄(폭행·살인·강간 등)가 지난 5년(2019~2023년)간 11.6% 증가한 것으로 4일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26만7382건이던 전체 강력 범죄는 2023년 22만3908건으로 16.3%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의 강력 범죄는 2만3522건에서 2만6252건으로 늘었다. 지난 5년간 노인 강력 범죄 증가율이 작년 기준 노인 인구 증가율(4.9%)의 배 이상이다. 노인이 저지른 성범죄(강간 및 강제추행)도 2019년 2124건에서 2023년 2344건으로 약 10%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노인 범죄는 ‘생계 범죄’가 많았다면 최근엔 다중(多衆)을 겨냥한 살인·폭행 등 강력 범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노인들 일부는 흉악범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방화 범죄도 잇따라 저지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불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원모(68)씨는 이혼 소송에 불만을 갖고 휘발유 등을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21일 서울 관악구에서는 층간소음 문제로 60대 남성이 직접 제작한 화염방사기를 사용해 이웃집에 불을 질렀다. 이 사고로 본인이 숨지고 다른 주민 13명이 다쳤다. 범인은 플라스틱통에 인화성 액체를 넣고 가열 장치를 달아 화염을 분사하는 방식의 사제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이전부터 이웃과 갈등을 겪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가 만난 경찰관들은 60~80대 노인 범죄가 더 극단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어 현장 대응에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어르신들이 예전보다 훨씬 정정한데 위험한 흉기를 들고 범죄를 저지르면 정말 무섭다”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창·낫에 이어 화염방사기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노인 범죄 신고가 들어오면 요즘엔 특히 긴장된다”고 했다.

노인들의 ‘강력 범죄’가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평균 수명이 대폭 증가한 노인들의 체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좋은데도, 60세가 넘으면 사회에서 밀려나는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건강하고 외관상 힘이 센데도 퇴직 등으로 사회적인 위치를 상실하면서 정서적 불안과 고립,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부산 사상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는 60대 남성 민원인이 여성 공무원 두 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5월 충북 청주에서는 70대 민원인이 시청 공무원을 각목으로 폭행해 입건됐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인층 2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이 중 상당수가 폭력적 충동이나 자해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화로 인한 호르몬 변화 등도 범죄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직업을 잃은 노인이 사회에서 소외될 때 감정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호르몬 변화와 신경전달물질 감소가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려 심리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이모(67)씨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감정을 참기 어렵다”고 했다.

노인 범죄가 증가하는 현상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고령화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혜경 한국법무보호복지학회장은 “독거 및 빈곤 노인, 정신 질환 이력이 있는 고위험군에 대한 정밀 모니터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5/06/05/7XADVWTOUJF2XJRSOMNNI556KI/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