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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필사적인 필사… "나를 바꾸고 싶다"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5.06.05. 00:01 업데이트 2025.06.05. 09:37

'천만 석의 곡식이 서책에 있다'는 시대는 한참 지났지만
성경, 불경, 논어 심지어 라틴어를 지금도 조용히 베껴 쓴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믿음… "열망한다면 이루어지리라"

일러스트=이철원


‘집안을 부유하게 하려면 기름진 토지를 사지 말라’는 말을 책에서 보고 웃음이 터졌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요지에 부동산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빚을 내는 것도 능력이며, 배포도 갖춰야 하고, 흐름도 타야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책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집안을 부유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다음 문장은 이렇다. ‘곡식 천만 석이 서책 속에 있다.’

‘황금’과 ‘미인’ 모두 책을 읽으면 얻을 수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과거에 급제하는 게 세상을 얻는 방법이었다. 물론 책을 읽은 모두가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리(文理)가 트여야 했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월등해야 했다. 그걸 다층적으로 시험하는 과정이 과거(科擧)다. 책을 읽어온 공력을 테스트하는 글쓰기 시험을 통과하면 신언서판 시험이 기다렸다. 신(身), 언(言), 서(書), 판(判), 모두 별도 시험이다. ‘신’은 당당한 용모와 풍채, ‘언’은 논리정연한 언변, ‘서’는 글, ‘판’은 세상 이치에 대한 판단력을 평가했다. 신언서판 시험을 통과하면 마지막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황제의 질문에 답하는 문답 시험이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둔황’은 바로 그 세계에서 시작한다. 1026년, 송나라 시대 고등 문관 시험인 진사시에 응시한 조행덕의 세계이기도 하다. 책과 글로는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해온 그는 신언서판 시험을 앞두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다가 ‘신언서판’이 과거 시험의 단계임을 처음 알았다. 명리학적 세계에서, 그리고 열렬한 그 추종자였던 조선에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인 신언서판만을 알았다. 심지어 잘못 알고 있었다.

‘서’에 대한 부분이었다. 당연히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이 아니라 ‘글씨’였다. 얼마나 수려한 필체를 가졌느냐로 과거에 붙거나 떨어졌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 세계에서 아름다운 글씨가 아름답지 못한 글씨보다 좋은 것은 자명할 것이며, 아름다움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자기만의 서체를 확립하는 일은 절대적인 경지였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글씨로 이름을 날린 것은 그 글씨가 단순한 아름다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언서판이 절대적인 시대였기에 그랬다. 그래서 왕희지나 추사처럼 필명(筆名)을 날리는 일이 가능했다. ‘책 패권 시대’의 일이다.

‘곡식 천만 석이 서책 속에 있는 시대’에서 한참 지나버린 시대에 이 책을 읽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실용 시대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은 쓸모가 없다. 책에서 황금과 미인은커녕 약간의 교양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뿐인데, 그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가성비와 효율을 추구하는 시대에 교양과 즐거움이 무슨 소용? 그리고 책보다 재밌는 게 넘쳐나는데 왜 책에서 재미를 추구함? 그러니 책을 읽으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가 배경인 소설을 읽는 일은 무척이나 파격적이면서 또 생경했다.

하지만 아주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시대에 불고 있는 필사 열풍이 떠올랐다. 바야흐로 ‘필사 시대’라고 할 만큼 필사에 관한 책이 넘쳐난다. 인터넷 서점에서 ‘필사’로 검색하면 다종 다기한 필사 책을 볼 수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필사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나의 어휘력을 위한’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에 힘이 되는’ ‘행복을 위한’이라는 제목을 보면 독자들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효용을 알 수 있다. 불경, 논어, 성경, 헌법, 라틴어를 베껴 쓰기 위한 필사 책도 있다.

‘둔황’은 1900년대 초 둔황석굴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필사본이 어떻게 매장되었나를 작가적 상상으로 채운 소설이다. 주인공 조행덕은 멸망을 앞둔 상황에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면 필사본이라고 생각하고, 낙타 60마리에 실어 석굴에 숨긴다. 필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길 수 없는 시대였다. 필사하지 않으면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시대의 정수(精髓)를 필사적으로 지켜낸 것이다.

책이 귀중하던 시대의 글씨와 더 이상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의 글씨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의 필사와 지금 필사는 다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필사라는 행위에는 나를 바꾸겠다는 열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열망한다면 이루어지리라.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6/05/5R6JM7OMQZGN5EO7TQ3ANEQEYA/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