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규 기자
입력 2025.06.04. 22:57 업데이트 2025.06.04. 23:45
1980년대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관 건물에서 도청 장치가 3000여 개 발견됐다. 러시아가 벽·바닥 등에 몰래 심어놓은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미 정부는 아예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었다. 건축 장비·자재·설비·컴퓨터·가구에 콘크리트까지 미국에서 가져와 미 해병대가 시공했다. ‘보안 건축’ 원칙은 전 세계 미 대사관에 적용됐다. 30cm 삼중 방탄유리와 도청·전자파 방지 장치로 둘러싸인 런던의 미 대사관은 ‘10억달러 요새’로 불린다. 러시아도 미 FBI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자국 기술자와 자재로 워싱턴에 ‘방첩 대사관’을 지었다.
▶2012년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도청·녹음 장치가 다수 발견됐다. 이듬해 독일 메르켈 총리의 휴대폰이 미 국가안보국에 10년간 감청된 사실이 드러났다. 프랑스 대통령들의 통화 내용도 도청됐다. 2015년 중국에선 시진핑 주석 등 고위층에 대한 디지털 감청 의혹이 불거졌다. 호주 정부 청사에선 중국에 의한 도청용 주파수 송출 정황이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 마러라고엔 중국계 여성 스파이가 침입했다. 각국은 정상 집무실과 주요 부처에 전면 보안 점검과 함께 무선 주파수 차단, 재배선, 통신망 검열, 완전 차단 회의실 설치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도청 및 통신 회선 복제 정황이 발견됐다. 국정원 보안팀이 투입돼 수주일간 고강도 보안 점검을 했다. 윤석열 정부의 용산 대통령실 입주 때는 기존의 CCTV와 인터넷·전화선을 모두 교체하고 각종 도·감청 보안 조치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를 보수해 최대한 빨리 용산에서 옮겨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안이 걸림돌이다. 청와대는 지난 3년간 일반에 관광지로 개방돼 있었다. 지금까지 700여 만명이 관람했고 외국인도 70만명이 넘는다. 중국·러시아·북한 등의 첩보원도 당연히 끼어 있었을 것이다. 건물 내부와 각종 시설물에 도청·추적·통신 장치를 몰래 설치했다면 큰일이다. 사전 보안 조치가 필수적이다.
▶경호실은 최근 비공개 점검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각 건물 벽·천장·전등, 외부 조경물·나무 등에 대해 일일이 무선·광학·음향·금속 탐지 검사를 하고 통신·전력선과 보안 시스템까지 재설치하려면 서너 달은 걸릴 전망이다. 본관·관저·비서동 보수도 필요하다. 국민 관광지를 빼앗아 다시 구중궁궐로 만들려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일부에선 관저 대신 다른 공관이나 안가를 쓰자는 얘기도 나온다.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6/04/OPBRMDMZ4FATPFTGGTXL7RFK7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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