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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北 민주화 운동 맏형의 부음

김민철 기자
입력 2025.09.14. 21:01 업데이트 2025.09.14. 23:36

일러스트=이철원


2004년 2월 어느 날 김성민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전직 외교관 등 탈북민 지인들과 식사 중이었다. TV에서 남북이 상호 비방 금지 차원에서 대북·대남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국 정부가 하지 않으면 우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참석자들 눈은 일제히 김 전 대표를 향했다. 당시 그는 KBS ‘남북의 창’ 등에 출연해 방송을 좀 알 때였다.

▶그렇게 그해 4월 첫 대북 방송을 날렸다. 그 후 매일 2시간씩, 365일,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방송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 김 전 대표의 자부심이었다. 친북 단체가 방송국 앞에 몰려와 시위를 했지만 그는 “북한을 찬양하는 자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을 보니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방송을 모델로 많은 대북 매체들이 탄생했다.

북한군 예술선전대 대위 출신인 그는 1995년 탈북했다. 1999년 입국한 그는 온화한 성격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탈북민들의 맏형 노릇을 했다. 그에게 신세를 지지 않은 탈북민은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탈북자동지회에서 황장엽 전 비서를 보좌하다 회장까지 맡았다. 황 전 비서가 ‘내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각별한 정을 보인 것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 전 대표가 암 투병 끝에 12일 세상을 떠났다. 63세로 요즘엔 한창 활동할 나이다. 고인은 지난해 암이 재발해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그를 괴롭힌 것은 암덩어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북한은 두만강 변 등에 철조망을 치고 지뢰까지 묻었고, 중국은 안면 인식 AI로 탈북자들을 속속 체포하는 상황이다. 탈북자 수가 연 200명 안팎으로 줄었다. 현 정부 출범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이달엔 대북 심리전 라디오 방송인 ‘자유의 소리’ 송출도 중단했다. 대북 방송 지원이 끊기는 상황도 암담했을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산 지원을 끊으면서 북한에 외부 소식을 전해온 미국의소리(VOA: Voice of America), 자유아시아라디오(RFA: Radio Free Asia)도 송출 중단 위기를 맞았다.

▶그는 북한 땅에 자유를 전파하려던 북한 민주화 운동가였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자유’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것 없이는 살아도 죽은 목숨인/숨결이며 가치인 자유는/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분파적·폭력적인 방식은 국민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배제했다. 일시적이겠지만 그가 꿈꾼 세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 그의 부음이 더욱 안타깝다.

김성민
황장엽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5/09/14/WAIVUTWY5NHO7HXILZ3NXBNV4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