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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88] 원초적 소리들

문태준 시인
입력 2025.09.14. 23:37

일러스트=이철원



원초적 소리들

햇빛이 풀밭을 지나는 소리
나뭇잎들을 바람이 지나는 소리
물방울 소리
심전도 그리며 나비 나는 소리
내 핏줄의 끝 해변에서
새들 오르내리는 소리
앉아 쉬고 있는 소리……
미래적 소리들

-임선기(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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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귀가 참 밝다. 눈도 밝아서 미동을 잘 본다. 특히 세계의 본원적인 것을 세밀하게 감각한다. 이 세계는 실뿌리와도 같은 아주 작은 움직임과 가느다란 소리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시인은 단일하고 유일한 개개의 울림을 채집한다. 그 소리는 마치 흰 종이 위를 연필이 선이나 글씨를 남기며 지나가는 것만 같다. 풀밭에는 햇빛이 내리지만 자리가 조금씩 바뀌고, 바람은 매달린 나뭇잎을 밀고 흔들어서 바람이 지나갈 때 한 그루 나무는 꼭 편종 같고, 맑은 유리알 같은 물방울은 떨어져 깨지고, 나비는 물결 모양의 곡선을 그리며 날고, 생명의 실개천과 강이 큰 바다를 만나는 물길의 끝에는 새가 날아오른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소리도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것처럼 이 세계가 정말이지 조용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이 나지막한 소리가, 굉음의 문명 세상에 사느라 귀가 어두워진 사람에겐 침묵과도 같을 이 소리가 앞으로는 갈수록 가치 있는 소리가 될 것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9/14/ASCIOUOAA5ACBHRZKMMNZVZID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