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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찬용의 물건만담] '영포티 룩'이라니 억울하다 "옷이 죄냐, 내가 죄냐?"

40대 남성 패션
박찬용 칼럼니스트
입력 2025.10.01. 23:45

/일러스트=이철원


“그럼 잭필드라도 입으라는 거냐?” 한창 유행하는 ‘영포티 룩’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다. 입던 걸 입은 건데 갑자기 시대의 오물 비슷한 게 된 40대 남자들의 당혹이 느껴진다. 그 세대가 그렇다. ‘아저씨 옷’의 대명사 ‘잭필드 3종 세트’ 면바지는 입기 싫은 세대, 그렇다고 뭘 입어야 할지도 모르는 세대. 그래서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영포티 룩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이 차림(을 한 남자)의 어떤 요소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화를 내는가.

‘영포티 룩’ 아이템의 공통점이 있을까? 찾아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2010년대 인기였던, 브랜드 로고가 확연히 드러난, 격식 없이 입기 쉬운 옷과 물건들이다. 가격은 은근히 비싼 편. 영포티 아이템으로 분류되는 제품들은 반팔 티셔츠나 운동화 같은 통상의 의류 품목 안에서 비싼 축에 속하는 게 많다. 최근 영포티 아이템으로 꼽힌 오렌지색 아이폰 17pro도 해당 제품군의 최신형 고가품이다. 영포티 신발로 주목받은 나이키 조던의 일부 품목은 코로나 때 수백만원까지 가격이 올랐다.

영포티 제품의 높은 가격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포티의 재력 상승이다. 현재 영포티 남성이라면 출생 연도로는 1981~1985년생 정도다. 이 세대는 삶의 몇 가지 갈림길에서 좋은 판단을 했을 경우 (대기업 정규직 신분이 보장하는) 고용 안정성에 올라타 (당시 저렴한 집값을 활용해) 주거 안정성을 획득하고 (부동산 시세 폭등의 파도를 타며) 자산 증식까지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래 보이는 아저씨들이 로고가 큰 20만원짜리 티셔츠에 50만원짜리 운동화 차림으로 나온다면 그 자체로 시각적 상징물이다.

영포티 룩의 또 다른 특징은 평상복이라는 점이다. 헐렁한 바지와 티셔츠. 몸을 옥죄지 않는다. 이는 시대적 배경도 한몫한다. 내가 꼽는 시대적 변수는 2008년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캐주얼 전환이다.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가 한국 기업 전체의 조직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2008년을 기점으로 한국 대기업이 서서히 비즈니스 캐주얼로 전환했다.

잭필드 바지 3종세트. /Jackfield GS샵


문제는 보통 서양의 비즈니스 캐주얼이 ‘비즈니스 정장’의 캐주얼 버전이라는 점이다. 즉,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문법을 알아야 비즈니스 캐주얼의 해답을 낼 수 있다. 2000년대 후반에 입사한 당시의 영포티는 ‘정장 해체+비즈니스 캐주얼’ 초창기에 회사를 다녔으니 ‘어른 남자 옷 입기’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때는 전 세계적으로 남성 정장이 쇠퇴하고 힙합을 비롯한 스트리트웨어가 득세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던 2030들이 시간이 흘러 돈을 벌었다면 어릴 때 입던 옷의 비싸진 버전을 입지 않을까. 그게 ‘영포티 룩’이다.

인터넷상의 영포티 조롱과 별개로 실제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별 상관없다고 한다. “나에게 이상하게 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있다면 오히려 ‘영포티 룩’을 입은 남자들이 안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어요.” 강남에서 IT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송민형(28)씨의 말이다. 이미 영포티 룩은 한국 중산층 복장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기아 카니발과 교외 아웃렛처럼.

이른바 영포티론은 40대 여당 지지자들을 공격하려 제작된 프레임일까? “그럴 리가요. 정치보다는 세대 차이 같은데요.” 성수동 회사원 김태우(30)씨는 웃었다. “저희는 사회에 나오니 집값이 너무 비싸 막막해요. 그런 마음이 (고가 캐주얼을 입는) 영포티에 대한 반감으로 나올 수는 있다고 봅니다.” 프레임이라는 음모론에 대한 의견은? “자기들이 매번 남녀나 세대로 갈라치기를 하다 ‘영포티’로 갈라치기를 당한 기분이 어떨까 싶네요.”

그럼 대체 40대 남자는 무엇을 입어야 할까? “입은 걸 봤을 때 브랜드를 쉽게 알 수 없는 옷. 그런 건 안정적이고 점잖은 느낌이 듭니다. 사회가 40대에게 기대하는 요소는 든든함일 텐데, 그걸 옷으로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요.” 삼성물산 바이어 김동현(36)씨의 말이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해도 사회의 숫자엔 함의가 있다.

사실 40대의 옷이 따로 있지 않다. 요즘 세상에 아무거나 입어도 된다. 단 행실이 제대로라면. 칼럼에 등장한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해준 이야기가 있다. “셔츠에 타이를 입어도 불편하게 굴면 영포티라 느껴질 것 같아요.” “물건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매일 조선일보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01/STZLMBM2F5GSLKVLCY4JW32D2Y/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