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입력 2025.10.15. 23:45
대학병원 전공의는 일의 경계와 노동시간 기준이 없는 고된 직업
5년 수련이 무의미하진 않았지만… 의정 갈등이 의사를 재정의해
16년 전 병원에 인턴으로 처음 입사했다. 대학 병원 인턴은 지금이나 그때나 고된 직업의 대명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 초년생 나는 병원에 젊음을 갈아 넣어야만 했다. 당시 인턴은 노동시간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주말과 야간 근무. 출퇴근의 경계조차 모호했다. 병원에서 한 주를 꼬박 일하고 토요일 밤에 퇴근했다가 일요일 아침에 다시 출근하는 게 일반적인 스케줄이었다.
일의 경계도 애매했다. 정맥주사·채혈·심전도 찍기·관장·수술방 침대 밀기 등은 그나마 의료 업무였지만, 현황표 복사, 유선으로 환자와 수술 일정 조율하기, 회의 때 음료나 간식 준비하기, 식당 예약, 음식 배달 주문 등은 의사 업무로 보기도 어려웠다(심지어 후자가 더 중요한 업무로 취급되었다). 반드시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해야만 하는 업무는 아니었지만 항시 바빴다.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응급 상황이 있으면 오프도 반납하면서 그야말로 병원에서 살았다.
레지던트가 되었지만 여전히 노동 시간의 기준은 없었다. (레지던트는 영단어로 ‘거주자’라는 의미가 있다). 대신 업무가 치명적일 정도로 과중했다. 앞서 인턴의 업무를 공유하면서 진단·질환 설명·처방·주요 술기(main skills) 등 진료 일체에 관여하고 전문의의 지도를 받았다. 하필 나는 당시 전국에 전문의가 1000명도 되지 않던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였다. 의사 면허를 딴 다음 해부터 병원에 찾아오는 모든 응급실 환자를 격일로 밤을 새워 막아낸 뒤 아침에 브리핑과 저널 발표를 하며 4년을 버텼다. 심지어 인력이 부족해 책임자로 일하는 날도 많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수련 과정이었다. 일단 휴게 시간이 보장되지 않았고 지나치게 긴 노동을 했다. 체력이 바닥나면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 환자에게 불친절해지거나 동료끼리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압도적인 근무 시간에도 일반 직장인 급여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 시절 수련이란 대학 병원에서 교육이란 명목으로 젊은 의사를 부려먹는 제도에 가까웠다.

이 과정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5년간의 수련은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일은 첫 단계부터 배워야 했다. 채혈을 직접 해본 사람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진료 과정의 이해도가 다를 수 있다. 또 주체적인 진료 참여와 적절한 지도는 전문의 양성에 필수적이다. 수련 환경 개선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10여 년 전 이미 응급실 전공의가 혼자 당직을 서는 일은 사라졌다. 주 80시간 특별법으로 정식 ‘퇴근’ 또한 생겼다. 물론 노동자로서 인턴과 레지던트의 권리 보호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올바른 교육과 환경 개선의 논의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던 지난해 2월 의정 갈등이 터졌다. 인턴과 전공의가 사직해 병원을 떠났다. 유일하게 병원에 남은 전문의가 모든 의사 업무를 대체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인력 부재로 초반에는 의료 체계가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업무 분담이 이루어졌다. 의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전문 인력을 신규 채용해 대체했다. 이 체계가 자리를 잡자 병원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래 대학 병원 진료의 최종 책임자는 전문의였고, 그 실행을 수련의가 아닌 전문 인력이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체계는 극단적으로 효율만 추구했다. 미래를 위해 신규 전문의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지난달, 인턴과 레지던트가 복귀했다. 현장은 예견된 혼란을 겪는 중이다. 일단 인턴의 업무는 거의 사라졌다. 이전 인턴이 왜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지 의아하지만, 오히려 수련의에게 반드시 필요한 업무가 무엇이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레지던트 또한 전문의 중심 체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느라 분주하다.
정리하자면 언젠가 겪어야 할 변화였다. 이것이 급진적이라 혼란스러울 뿐이다. 과도기의 혼돈을 넘어 의료계는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것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0/15/WI353AY2RVE3DJNFTVJY4XCXLU/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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