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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99] 오늘 저녁 오리들은 뭘 먹지

문태준 시인
입력 2025.12.07. 23:38

일러스트=이철원


그들은 따뜻한 자리를 빼앗기고
맨발로 얼음 위로 밀려나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낚시꾼들이 떠날 때까지

그들은 인간의 것은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얼지 않은 물을 바라볼 뿐이다
하루 종일

어쩌자고 사람들은 이 오지의 저수지까지 찾아와서
얼지 않고 양지바른 물을 차지하는 것일까
하루 종일

오리라고 찬 바람 부는 하늘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날이 춥기 때문이다

그들이 들어가고 싶은 곳은 오직 낚시찌가 떠 있는
저 찰랑거리는 검은 물밖에 없다
산에 해가 지고 있다

-고형렬(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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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면서 두메산골의 저수지에도 얼음이 얼었다. 얼지 않은 수면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곳은 낚시꾼들이 차지했다. 거기는 볕을 잘 받는 곳이요, 그래서 왕겨를 쌓아놓은 듯 포근한 곳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곳은 오리들의 몫이었다. 오리들이 들어가고 싶은 자리였다. 이 시에서는 차가운 얼음 위에 맨발로 웅크려 앉아 떨고 있는 오리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그러나 이 안쓰러움은 생명에 대한 연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자연에서든 어디에서든 그 영토의 고유한 어울림이랄까, 순조로움이랄까 이런 것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시인은 ‘외설악’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청초호 호숫가에 앉아 설악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한 산의 음악”이 들려온다고 썼다. 그리고 그 산의 음악은 산바람 소리 즉“산뢰(山籟)”이며, “약초의 노래”이며, “물과 바람의 만남과 경계 없는 흐름”이라고 적었다. 어느 것도 밀려나지 않고 제 영토와 노래를 갖는 원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고형렬
바람이 와서 몸이 되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2/07/YCDF5PZXNBGP5MO5TSZ4TID5P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