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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경비원 해고의 거부감 줄이려면 '하모니' 어떨까요?

16회 #아파트 단지
장강명 소설가
입력 2025.12.08. 17:47 업데이트 2025.12.08. 23:34

경비로봇경비로봇 이름 짓는 회의… '1984'의 감시 연상되지 않게 작명
심리적 저항 줄이고 고령·체력 빌미로 인간 경비원들 몰아낼 것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가드’나 ‘시큐어’를 이용한 명칭 후보들은 제가 강력히 반대하는데, 군대 같고 감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빌딩 경비로봇과는 구분해야 해요. 기본적인 기능이나 시스템은 같지만 장소가 다르고 맥락이 달라요.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 심리도 완전히 다르죠. 자기 아파트 단지가 병영이나 보안 시설처럼 느껴지는 기분을 좋아하는 주민은 없을 거예요.”

한국의 대기업인 네카팡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경비로봇 프로젝트의 네이밍 브레인스토밍 회의였다. 스크린에서 ‘가드’와 ‘시큐어’가 들어갔거나 그 단어들이 변형된 이름 후보들을 가리키며 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동의합니다. 우리 로봇들이 장점으로 내세우는 요소가 단지 전체의 CCTV와 24시간 연동된다, 그래서 사각지대 없이 단지 전체를 잘 살필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점이잖아요. 홍보 영상에도 그런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할 거고요. 이게 양날의 검입니다. 자칫하면 ’1984′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24’나 ‘365’가 들어간 이름도 내키지 않네요.”

프로젝트 매니저가 말했다. 그는 개발자 출신이지만 잠재 고객들의 니즈를 읽는 감각이 있어 마케팅 팀장과 소통이 잘되는 편이었다.

“‘가디언’은 어떤가요? 뺄까요?”

네이밍 컨설턴트가 물었다. 이 팀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바로 저 컨설턴트라고 마케팅 팀장은 생각했다. 소비자심리학 박사학위가 있다는데,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건 당연히 빼야죠. 로봇이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주잖아요. 아파트 단지 경비로봇은 빌딩 경비로봇보다 훨씬 귀엽게 생겨야 한다, 키도 작고 팔도 짧고 걸음걸이도 살짝 우스꽝스러워야 한다고 저희가 개발팀에 얼마나 요구했는데요. 참, 폴리스라는 단어 들어간 이름이랑 센티널, 센트리 어쩌고 하는 이름도 빼야 돼요. 보초병이라니, 나 원.”

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걸음걸이 보정은 기계역학적으로 정말 쉽지 않고, 키나 팔 길이도 더 줄일 수는 없습니다. 택배를 받아야 하거든요. 기존 인간 경비원들이 안 하려고 하는 일을 아파트 단지 경비들은 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개발 계획을 세웠어요. 택배를 받아서 현관까지 가져다주는 기능이랑 대리 주차, 쓰레기 분리 같은 것들이요. 귀엽게 보이는 게 더 중요한 일은 아니겠죠, 설마.”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에서 시범 테스트 중인 '자율주행 AI 순찰 로봇'. /SKT·뉴스1


개발팀장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네이밍 컨설턴트는 이미 경비로봇이 충분히 귀엽고 아담하다고 생각했다. 컨설턴트는 장난 삼아, 혹은 화풀이로 경비 로봇을 때리거나 차는 주민이 꽤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런 우려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능적으로 집을 보호합니다(We Intelligently Secure Home), ‘위시’는 어때요? 이거 AI가 지어준 이름인데요.”

프로젝트 매니저가 물었다.

“별로예요. 뜻풀이를 알면 괜찮게 들리지만 그냥 ‘위시’라고만 하면 너무 막연해서 떠오르는 게 없어요. 저는 버디, 네이버, 스마트, 아이온, 아이편안, 도우미, 미소, 파트너, 이런 단어를 활용한 이름도 뺐으면 좋겠네요. AI에 물어보니 소비자 예상 반응도 별로 안 좋은 거 같은데요. 반대로 세이프티나 케어, 키퍼 같은 단어가 들어간 이름들은 저희 시스템 기능을 너무 좁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요. ‘하모니’ 어떠세요?”

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사실 저도 속으로 이거다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아파트 단지 경비로봇 도입에 대해 소비자 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의외로 가장 걸림돌이 기존 인간 경비원을 잘라야 한다는 점이거든요. 아무래도 가까이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는 인간 노동자다 보니 로봇으로 대체한다는 데 심리적 거부감이 드는 거죠. 인간일자리연대인가, 그 단체가 돌아다니면서 인간 경비원을 해고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영향도 의외로 있는 거 같고요.”

프로젝트 매니저가 말했다.

“임원 회의에 1, 2순위를 ‘하모니’를 사용한 문구로 올리고, 3순위는 아무거나 올릴까요? ‘올웨이즈’ 같은 걸로?”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마케팅 팀장과 프로젝트 매니저가 그렇게 묻고 답했다.

“경비로봇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그렇게 큰가요? 저희 대책은 뭔가요?”

“기존 인간 경비원들을 저희가 재고용하겠다고 발표하는 거죠. 경비로봇을 도입한다고 인간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인간 경비원은 위험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인간만 할 수 있는 통합 관리 업무를 하면 된다, 그렇게. 재고용률 자체는 처음에는 70% 정도로 잡아야 반발이 없을 거 같네요. 고령자가 많으니까 연령 상한선을 두고 전과 조회를 해서 결격자를 걸러내면 30% 자르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다음에는요?”

“재계약 때마다 체력 테스트를 하는 거죠. 매번 15% 정도씩 해고하면 금방....”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12/08/G7QVSO4PHFA5LH3EX62CT5K5SM/
일러스트=이철원 ALL: https://ryoojin2.tistory.com/category/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