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사진 읽기] [14] 사진을 혐오한 천재 시인의 초상 사진
▲ 에티엔 카르자, 보들레르의 초상, 1863년경,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사진은 산업화와 기계문명을 상징하는 예술이다. 프랑스 정부가 사진을 하나의 기술적 발명품으로 인정
한 1839년 이후 정확하게 20년 만에 샹젤리제 궁에서 열린 미술전에선 전통적인 회화와 나란히 사진협회
가 주관하는 전시가 열리게 된다. 이로써 사진이 독립적인 예술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음에도 이를 예
술의 위기라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이 사진의 주인공 샤를 보들레르는 '현대의 대중과 사진'(
1859)이라는 평론을 통해 사진이 예술을 오염시키고 있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사진은 무능하고 게으른
화가들의 도피처일 뿐이라고 폄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보들레르는 에티엔 카르자(Etienne Carjat·1828~1906)가 찍은 이 사진을 비롯해서 인상적인
초상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비평가로서의 날 선 공격과는 달리 당시 첨단 유행이라 부를 만했던 초상
사진에 그 역시도 열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망명지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함께 '정확하면서도
흐릿한' 사진을 찍으러 가기를 고대한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사진은 어쩌면 그의 맘에 들
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빠진 머리카락과 깊게 파인 볼, 모든 결점과 주름이 다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좋아했던 어떤 낭만적인 흐릿함을 지닌 사진들보다도 그의 날카로운 천재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남았다.
사실 보들레르의 비난은 사진에 대한 것이라기보단 산업화가 가져올 파행적 맹목성에 대한 경고였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이상 행복을 꿈꾸지 않는 '산업적 광기'에 대한 우려였던 것
이다. 오늘날 그가 예고했던 '사진의 공습'은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 그것을 재앙으로 만들 것인지 행
복으로 바꿀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사진 속 보들레르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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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31 03:03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30/2013103004379.html
에티엔 카르자 작품 더 보기: 이곳을 클릭(google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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