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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장터에 구성지게 울려 퍼진 정선아리랑

 
오태진의 길 위에서
장터에 구성지게 울려 퍼진 정선아리랑
입력 : 2013.12.12 05:37

 

으뜸가는 민속장 '아리랑 市場'…
솥에서 바로 꺼내 썰어주는 족발, 따끈한 찐빵에 초겨울 추위 녹고 시장통엔 부침개 냄새 가득해
애틋한 恨부터 흥겨운 해학까지… 아라리 가락에 실린 인생 五味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강을 사이에 두고 사는 처녀 총각이 머릿기름 짜는 생강나무 열매를 따러 가기로 했다. 약속한 날
폭우로 물이 불어 아우라지 나루터 배가 끊겼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릿골 올동박
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나라 잃은 설움부터 산골 삶과 뗏목 일의 고달픔, 남녀 사랑, 고부 갈등까지. 달고 맵고 쓰고 시고
떫은 인생 오미(五味)가 구성진 가락에 실려 장터에 퍼진다. 나이 지긋한 정선군립 아리랑예술단원
이 북 치고 춤사위 곁들여 아라리를 풀어놓는다.


느리고 애틋하던 한(恨)은 어느새 빠르고 흥겨운 해학으로 넘어간다. "우리 낭군님은 나를 흑싸리 껍
데기로 알지만 나는 낭군님을 공산 명월로 안다오…." 다채로운 소리 한판 30분이 어찌 갔는지 모르겠
다. 뜻밖에도 닷새 장터에서 곡진한 정선아리랑을 공짜로 즐겼다. 아침 일찍 240㎞ 길 달려온 피로가
싹 가신다.


정선읍 닷새 장은 끝자리가 2나 7로 끝나는 날, 닷새마다 선다. 지난 주말 7일이 모처럼 장날과 맞아
떨어져서 벼르던 장 구경을 갔다. 고속도로가 사통팔달 뚫린 세상에 참 멀기도 멀다. 영월에서도 굽
이굽이 왕복 2차로 산길을 한참 넘고서야 정선이다. 앞 남산과 뒤 비봉산에 빨랫줄을 맨다더니 엔간
한 두메산골이 아니다.


농한기 12월에 들면 시골 장터는 썰렁하게 마련이다. 겨울에 쉬는 장도 많다. 정선장이 서는 아리랑
시장은 도회지 시장통 뺨친다. 주변 찻길 곳곳에 불법 주정차 차량 찍는 CCTV가 매달렸다. 1만3550
㎡, 4000평 넘는 장터에 상설 시장처럼 번듯한 반투명 지붕을 얹었다.


아침 10시,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입구부터 참기름 발라 김 굽는 상인들 손이 바쁘다. 시장 통로 양쪽
으로 간판 내건 가게가 즐비하다. 옷가게 정육점 다방 미용실 노래방에 경양식집 '별동별', 싸전 '풍년
상회'…. 250개가 넘는 가게 앞 통로에 정선 사람 100명과 외지 장꾼 60명쯤이 난전을 벌인다. 좌판·
노점보다 점포가 훨씬 많은 장이다.


정선장엔 사철 나물과 약재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캔 햇나물'이라고 써 붙인 곤드레 취 곰취가 수북
이 쌓였다. 더덕 장뇌삼 영지버섯 뽕잎 헛개나무 부지깽이나물에 '살 빠진다'는 빼빼목, '천연 비아그
라' 야관문도 있다. 나물부터 더덕까지 장아찌 가짓수가 많기도 하다.


된장을 독째 내놓고 맛보라 한다. 콩이 안 보이게 곱고 잘 삭은 진갈색 집된장이다. 10년 묵었다는
'조선간장'은 진한 빛깔에 아주 옅은 단맛이 돈다. 요즘 사 먹기 힘든 간장이라 한 통을 1만원에 샀다.
참기름도 짜 갈까 싶어 방앗간에 들렀다. 고춧가루 빻는 매운 내에 참기름 짜는 고소한 내가 뒤섞여
눈코가 정신을 못 차린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그냥 나왔다.


잡곡 좌판을 벌인 할머니께 "사진 찍어도 될까요"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
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 옆 무말랭이를 다듬는 할머니는 가슴에 큼직하게 신분증을 달고 있다. 정선
사람이 정선에서 키운 토종 농산물만 판다는 '신토불이'증이란다. 할머니 성함과 사진이 들어가 있다.
할머니가 딴 데를 보며 못 이긴 척 촬영을 허락한다. 인사 삼아 손수 농사지었다는 수수 한 되 1만원
어치를 샀다. 밥에 섞어 먹을 생각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람들 틈을 비집고 고무줄 행상이 다닌다. 바퀴 달린 고무 함지에 흰 고무줄 타래를 싣고 발로 밀며
호객한다. "평생 안 끊어지드래요. 아는 사람만 사고 모르는 사람은 못 사드래요." 정선장에서 가장
시골 장꾼다운 아저씨다. 아내가 반갑다는 듯 세 가닥을 3000원에 산다.


여기저기 번철 내놓고 기름 둘러 지지고 부치는 소리며 냄새가 요란하다. 차진 수수 반죽에 이나
녹두 앙금 넣어 수수부꾸미를 지진다. 배추 잎을 얇은 메밀전에 부친 게 메밀부치기다. 메밀전병
다진 신 김치를 말아 부친다. 찐빵 솥뚜껑 열자 퍼져 나온 김이 초겨울 추위를 녹인다. 육수 끓는
솥 걸어두고 바로바로 꺼내 썰어준다. 바닷물로 빚었다는 따끈한 두부는 금세 동났다. 튀밥
도 빠질 수 없다.


시장 안 먹자골목 이름난 집에서 이른 점심을 들었다. 5000원씩 하는 콧등치기곤드레밥, 모음전
시켰다. 메밀 면발이 탱탱해 후루룩 빨면 코를 때린다고 콧등치기다. 김 가루와 다진 김치를 고명으
로 얹은 국물이 시원하다. 곤드레밥은 별 양념도 없는데 맛있다. 좋은 참기름을 쓰는 모양이다. 모음
전은 미리 부쳐뒀다 내는지 미지근하다.


정오가 넘자 제대로 걷기도 힘들게 붐빈다. 아침 8시 10분 청량리역을 떠난 '정선오일장 열차'가 정선
역에 도착하면서다. 1999년부터 장날마다 오가는 관광 열차다. 정선장은 1966년 나물과 생필품을 사
고파는 물물교환 장으로 시작해 이제 으뜸가는 민속장이 됐다. 올 들어 10월까지 41만명을 불러 모았
다. 지난 4월 '아리랑시장'으로 재개장한 뒤 11월까지 가게 평균 매출이 9700만원이라고 한다. 정선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손님 맞은 덕분일 것이다. 다만 워낙 이름이 나다 보니 아무래도 정
(情)과 인심을 나누는 시골 장터 맛은 덜하다.


싸라기눈 뿌리는 산길을 돌아 나오면서 귓가에 정선아리랑 가락이 맴돌았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
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정선장에 가면 낮
12시와 1시 반 두 차례 공연은 꼭 보시라.

 

원문: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11/2013121104354.html

 

오태진의 길 위에서 전체 기사 보기:

http://premium.chosun.com/svc/news/nlist.html?opt=none&catid=5A8

 

^^

아래는 2013-06-22 제가 정선5일장을 다녀온 링크입니다.. 사진 클릭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정선5일장 2013-06-22

http://blog.daum.net/ryoojin2/848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정선5일장 맛집.. 대박집 2013-06-2

http://blog.daum.net/ryoojin2/849

 

▽ 정선5일장 위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