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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兵士묘역에 묻히겠다는 將軍 남편, 안 서운했어요"

"兵士묘역에 묻히겠다는 將軍 남편, 안 서운했어요"


입력 : 2013.12.16 02:36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16/2013121600099.html


문정인 여사, 남편 故 채명신 장군을 추억하다

'부하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난 고(故)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은 '본인의 평소 뜻대로' 장군 묘역 대
신 월남전서 전사한 병사들이 묻힌 국립서울현충원 제2묘역에 안장됐다. 채 장군이 별세한 직후 부
인 문정인(84) 여사는 고인의 뜻에 따라 병사묘역에 안장되길 요청했지만, 국방부와 현충원은 전례
가 없다며 난색을 보였었다. 하지만 문 여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채 장군의 유언이 담긴 서신
을 청와대에 보내 다시 청했다. 고심하던 정부는 결국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지난 12일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만난 고 채명신 장군의 부인 문정인 여사는
“남편은 늘 병사들과 똑같이 화장(火葬)하고 같은 묘역에 묻히길 바랐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12일 아직은 이르다며 두 차례 거절당한 끝에 찾아간 서울 이촌동 자택에서 만난 문 여사는 강
건너 동작구 현충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소 남편은 현충원 묘역을 가리키며 월남에서 생사를 같이
한 이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 하셨죠.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남편은 전사한 전우들 생각을 하면
서는 눈물을 쏟았어요."


사실 여러 장군도 비슷한 희망을 갖고 있지만 부인의 눈치 때문에 병사 묘역에 묻히겠다는 말을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의 그런 결정에 서운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남편하고만 함께 묻히면 장
군 묘역이면 어떻고 병사 묘역이면 어때요?"


문 여사가 회고하는 남편 채명신 장군은 음식 타박 한 번 안 하는 다정다감한 남편이었지만, 임무를
앞에 두곤 가족 걱정을 잊는 야속한 가장이었다. 휴전 직후인 1954년, 경북 영덕 출신인 문 여사는 집
안 어른의 소개로 당시 영덕에 주둔하고 있던 채 장군을 만났다. 대학(이화여대) 졸업 후 서울에서 생
활하고 있던 문 여사는 군인 남편을 따라 전방을 돌았다. 전방 생활이 적적해 힘들었지만, 남편이 월
남전에 나간 4년보다 힘들 수는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애초에 참전을 반대했어요. 월남은 극도로 부패해 민심을 잃었고, 미군은 밀림 게릴라전 경
험이 없었죠.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본 거죠."


미군은 한국이 참전하지 않으면 한국 주둔 미군 7만명을 빼야 한다고 했다. 채 장군은 미 2개 사단이
떠나면 북한의 위협을 막을 길이 없다고 봤다. "남편은 월남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전투화 끈을 묶으
며 중얼거리더군요. '비엔(월남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미군 사령관)와의 머리싸움이 되겠군'
라면서요.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잘 있으란 인사 한마디 없이 나가버렸죠."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문 여사는 자녀들과 함께 한 달간 사이공을 방문했다. "남편과 함께
관사에서 쉬고 있는데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들었어요. 베트콩의 대규모 '구정 공세'가 시작됐던
것이었죠. 아이들과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남편은 '현 상태를 유지하라'더니 부관과 함께 전방으로 떠
났어요. 밖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데요. 지휘관으로서의 임무가 최우선인 사람이었죠."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을 선포한다. 직설적 성품의 채 장군은 유신에 반대하며 박정희 대통령
에게 "각하 그러시면 제명에 못 사십니다"고 받았다. 그해 채 장군은 대장(大將) 진급에서 탈락했다.
채 장군은 이후 정치권 영입 요청을 뿌리치고 9년 동안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를 지냈다. 81년
일시 귀국했지만 이내 미국으로 나갔다. 채 장군은 88년에야 귀국한다. "(신군부가) 우리의 입국을 반
길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남편은 단 한 번 불평하는 일이 없었어요."


생전에 이촌동 자택에는 남편을 찾는 참전 용사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전화 오고, 찾아오고…. 그럼 남편은 '반갑다 전우야'라며 그렇게 좋아할 수 없어요. 장교, 병사 가리지
 않았죠. 그렇게 좋아하는 전우들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남편의 뜻을 꼭 지켜주고 싶었어요."


서울 현충원 안장 하루 전인 11월 27일 문 여사는 청와대로부터 '고인의 뜻을 따르겠다'는 연락을 받
았다. 봉분이 있는 8평 장군 묘역 대신 1평 남짓에 화장을 해야 하는 병사 묘역이었다. "남편의 유골
이 담긴 항아리 옆에 항아리 하나 더 들어갈 자리가 있더군요. 내 자리구나 싶더군요. 남편 보러 현충
원에 가면 어김없이 시민들이 남편 묘를 찾아와 추모하고 계세요. 제 남편이 누리는 축복일 것입니다."

 

김충령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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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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