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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02 회사 사진반 강화도 촬영여행 중 광성보를 다녀왔습니다..
강화 광성보(廣城堡)는
인천 강화군 불은면 광성나루(광성진)에 있던 성보(城堡)로 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입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입니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습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덕진진·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으나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습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습니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정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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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성보 주차장 옆 감나무
▽ 광성보 안해루
▽ 드러난 나무 뿌리
▽ 광성보 신미순의총
광성보 내에 있는 조선 말기 무명용사들의 무덤.
1871년(고종 8) 4월 23일 광성진에서 벌어졌던 미해군 육전대와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
당시 군사를 이끌던 어재연 장군과 동생 재순, 군관, 사졸 등 53명의 전사자 중
어재연 형제는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나머지 51명의 시신은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호랑이를 사냥하던 포수 출신들로서 용맹함이 뛰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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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돌목돈대
▽ 광성보포대
▽ 용두돈대
▽ 용두돈대의 고 박정희 대통령 자필 기념비..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 용두돈대 아래에서 낚시중인 강태공.. 맞은편이 김포시..
이곳은 육지와 강화도 사의의 폭이 좁아 밀물/썰물때 물살이 쌔기로 유명함..
▽ 광성돈대
▽ 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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