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19.06.13 03:12
유명 셰프·식당, 잇따라 호텔 입점… 호텔은 기업 M&A하듯 경쟁력 확보
과거 호텔, 업계 주도·인력 양성… 요즘 젊은 외부 식당 트렌드 주도
모던 한식 레스토랑 '주옥'이 이번 주 서울 소공동 '더 플라자 호텔'에서 문을 열었다. 지난해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 서울판에서 별 1개(최고 3개)를 받은 주옥은 신창옥 요리사가 서울 신사동에서 운영해왔다. 신 요리사는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신사동 매장을 접고 더 플라자에 입점하는 형식"이라고 했다. 지난 1년여간 외식업장 개편을 준비해온 플라자 호텔은 주옥 외에도 미쉐린 별 1개를 받은 '스와니예'의 이준 요리사가 선보이는 유러피언 다이닝 '디어 와일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마스터 셰프 코리아' 준우승을 차지한 박준우 셰프의 디저트 공간 '더 라운지', 이영라 요리사가 운영하는 '르 카바레 도산'의 분점격인 '르 카바레 씨떼' 등을 이번 달 안으로 입점시킬 예정이다. 중식당 '도원'과 뷔페식당 '세븐 스퀘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외식업장을 외부 요리사들에게 맡기는 셈이다.
호텔업계에 외부 식당·요리사 영입 바람이 불고 있다. 반얀트리 서울은 대표 업장인 '페스타 다이닝'을 미쉐린 2스타를 받은 모던 한식 레스토랑 '밍글스' 오너셰프 강민구씨에게 맡기고 '페스타 바이 민구'라는 간판으로 오는 7월 새롭게 오픈한다. 신라호텔 '팔선'을 한국 최고 중식당 반열에 올린 후덕죽 요리사는 지난달 르 메르디앙 서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허우(候)'를 오픈했다. 포시즌스호텔은 지난 3월 직영 일식 레스토랑을 접고 그 자리에 모던 일식 레스토랑 '아키라 백'을 열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옐로우 테일'과 '쿠미'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 아키라 백(본명 백승욱)은 서울 청담동 '도사 바이 백승욱'으로 미쉐린 1스타를 받았으며 본인의 이름을 딴 '아키라 백'을 토론토·방콕·하노이·싱가포르·두바이 등지에서 운영 중이다. 롯데 시그니엘은 지난 2017년 오픈하면서 프랑스 스타 셰프 야닉 알레노와 광주요그룹이 각각 운영하는 '스테이'(미쉐린 1스타)와 '비채나'(미쉐린 1스타)를 영입했다.
국내 호텔이 스타 셰프 레스토랑을 영입한 첫 사례는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글로벌 수준의 초일류 호텔로 나가려면 스타 셰프 레스토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스타 셰프를 대상으로 검토해 가니에르로 정하고 긴 설득 끝에 2008년 영입에 성공했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호텔업계에는 외부에 업장을 맡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있더라도 식당이나 클럽 등을 운영하려는 업자에게 공간을 내주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이었다. 과거에는 호텔이 외식업계를 장악하고 외식 트렌드를 선도했다. 호텔이 양성한 인력이 외부로 나가 식당을 차리고 유명 셰프가 됐다. 그 흐름이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호텔들의 스타 셰프·레스토랑 영입은 기업의 인수·합병(M&A)에 비교할 수 있다. 과거 삼성은 시간과 돈, 인력을 쏟아부어 반도체 산업을 자체적으로 키웠지만, 요즘은 유망 기업을 인수해 특정 분야의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한다. 과거 호텔 밖에는, 특히 서양 음식의 경우 제대로 된 식당이 드물었다. 요즘은 호텔 말고도 레스토랑 운영 역량을 갖춘 업체나 개인이 많아졌다. 오히려 호텔들이 그 규모와 조직 때문에 외식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 못하고 있다. 강민구 요리사는 "호텔 측에서 로드 레스토랑(road restaurant·개별 식당)의 젊고 빠른 변화를 수용하고 싶어하더라"고 했다.
호텔 식당 손님층 변화도 외부 식당·요리사 영입 배경이 됐다. 더 플라자 호텔 관계자는 "과거 호텔 식당 손님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해외 고객이 80% 이상"이라며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고 확장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운영 및 제휴를 통해 시간 단축과 고객·매출 증대 효과를 노렸다"고 했다. 호텔 식당 주요 손님층이 외국인으로 바뀌면서 미쉐린에 소개되는 등 해외 인지도가 있는 식당이나 요리사가 필요해졌다. 게다가 외국인 관광객은 한식을 맛보고 싶어한다. 주옥처럼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모던 한식당을 영입하고 싶은 이유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외식시장에서 생존하려는 요리사들의 절박함이 호텔의 변화 요구와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한 유명 요리사는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솔직히 우리 식당도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재정·인력적으로 안정적인 대형 호텔과 제휴하면 훨씬 걱정을 줄일 수 있으니 셰프 입장에서도 호텔 입점은 매력적"이라고 했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2/20190612034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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