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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충청도 사람들은 왜 강연을 듣고도 박수를 안 치는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6.08 03:00 | 수정 2019.06.08 07:16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지난 화요일에는 충청도 좀 외진 곳으로 강연을 갔다. 넓은 강당에 350명 정도가 모인 모양이다. 80분 가까이 계속되는 강연이어서 때로는 예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약간 웃기는 얘기도 했다. 피곤과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뜻밖에도 청중은 아무런 표정을 안 보이고 웃지도 않았다. 다른 곳의 강연에서는 내가 따라 웃어야 할 정도로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충청도에선 슬픈 얘기에 안경 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 사람은 있어도,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강연을 끝내고 강단에서 내려올 때도 박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에 남지 않았다. 며칠 전 서울의 한 교회에 갔을 때는 온 교인이 일어서서 예배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손뼉을 치기도 했다. 나 혼자 생각해 보았다. 아마 내 강연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는 후회가 남기도 했다. 그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회사 책임자에게 제 강연이 도움이 되었습니까?물었다. 그는 , 참 좋았습니다. 한 번 더 모셨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라고 했다. 그 사람도 열심히 강연 내용을 메모하던 것으로 미루어 강연에 불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휴게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내가 잘 아는 두 사람도 동석했다. 멀리 떨어진 도시까지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다. 내 강연의 열성 팬이다. 친분도 있고 해서 오늘 내 강연이 좋았어요?하고 물었다. 한 사람은 눈물을 참았는데요했다. 다른 한 사람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씀으로 감동을 주셨습니다라고 인정해 주었다. 내가 웃으면서 그런데 왜 박수를 안 쳤어요?했더니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박수를 잘 치지 않습니다하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박수를 치던 것 같은데라고 물었더니 그거야 서울이니까라고 답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충청도 사람들은 강원도 사람들보다 더 양반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감정 표현이 약한 편인가?내가 강원도 양구로 5~6년 동안 강의를 갔는데 지금은 전보다 손뼉 치는 도수가 확실히 높아졌다. 춘천 사람과 서울에서 동참한 청중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원도 기질을 바위 아래 늙은 부처님(巖下老佛)이라고 했는데 아마 충청도 사람들이 더 점잖은 양반 기질인 것 같다. 오래전이다. 청주에 강연을 갔다. 교통편이 여의치 못해 10분쯤 늦게 강연장에 도착했다. 쉬지도 못하고 연단으로 올라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울과 경기도를 통과할 때까지는 차가 잘 왔 는데, 충청도에 들어서니까 교통신호가 왜 그렇게 느린지 신호 대기 때문에 늦었습니다라고 했더니 모두가 웃던 생각이 난다. 내 친구도 그랬다. 안병욱 교수는 평안도 출신이어서 쉬 공감이 된다. 그런데 김태길 교수는 충청도여서 그런지 나에게도 점잖게 대하는 때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다. 그래도 큰 나라 못지않게 지역 기질이 다양해서 사는 재미가 크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07/20190607014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