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東語西話] 화산은 재앙, 그리고 축복

원철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

입력 2019.06.21 03:13


제주도 토박이 스님과 함께 비양도가 가장 가깝게 보이는 찻집을 찾았다. 섬과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에는 눈맛까지 더해진다. 배 시간에 맞춰 다시 돌아온 한림항 한쪽에는 비양도 선착장이란 이름을 따로 붙였다. 일행인 10여명의 본섬 주민들도 4년 만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물리적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섬 속의 또 섬인지라 심리적 거리는 이미 다른 섬인 까닭이다. 본섬에서 보는 비양도는 분명 딴 섬이었다. 하지만 비양도에서 본섬을 바라보니 큰 개울(?)을 사이에 둔 한 섬이었다. 본섬을 향한 자리에만 옹기종기 마을 집이 모여 있다.

소규모 섬이지만 그 안에는 제법 널따란 연못도 있고 꽤 높다란 오름도 있다. 현무암 색깔은 유독 검다. 천년 세월도 그 빛을 바래게 하기에는 모자라는 시간인가 보다. 용암으로 생긴 화산섬에 사람들이 이주하여 살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야 할까.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쌓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할까. 마을회관에는 '큰 둥지로 날아온 천년의 섬'이라는 글씨를 크게 새겼다. 큰 둥지는 본섬을 말하는 것이리라. 타고 왔던 배 이름도 '천년호'다. 마을 한복판에 '천년기념비'도 보인다. 1002년(고려 목종 5년) 6월에 화산으로 이 섬이 탄생했다. 2002년 천년생일을 기념한 것이다. 기록 이전의 시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국토와는 달리 지리서(地理書·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제주목 고적)에 생성 기록이 남아 있는 유일한 국토다. '비양'을 연호로 사용한다면 올해가 1017년인 셈이다.


마그마가 섬을 만들 정도로 치솟았다면 국가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첫 분출 이후 5년 뒤 1007년 다시 용암이 바다에서 솟아오르자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가 파견되었다. 하지만 지진과 화산재 그리고 열기로 인하여 접근이 어려웠다. 겁에 질려 하나같이 동행을 꺼리는지라 할 수 없이 책임자인 당신 혼자 산 아래까지 접근하여 그 형상을 그려 서울로 보냈다고 한다. 당시 인문지리에 능통한 최고의 전문가가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조사를 마친 후 개인적 소감란에는 '매우 큰 변고'라고 기록했을 것 같다. 한동안 연기 때문에 태양이 가려졌을 것이고 땅속에서 밤낮으로 며칠 동안 불길이 치솟았으니 그 시절 세계관에 따라 일식 혹은 월식처럼 나라에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라고 보고하지 않았을까.

천년 전과 달리 화산으로 섬이 생긴다는 것은 새로운 국토가 늘어나는 상서로운 일이 되었다. 2016년 11월 태평양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 니시노시마(西之島)에 화산 폭발로 인하여 3년 전에 생긴 인근의 화산섬과 이어지면서 서울 여의도만 한 섬이 새로 만들어졌다고 외신은 전한다. 육지 면적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섬 주위로 24배의 영해가 생기고 덤으로 배타적 경제 수역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해설까지 더해졌다. 섬에 딸려오는 바다 면적이 그 수십 배라는 것이다. 바다도 국토인 시대에 화산섬 탄생은 국가적으로 큰 경사인 시대가 된 것이다. 도시 가까운 곳에 화산이 폭발하는 것은 '폼페이 최후의 날'처럼 커다란 재앙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하여 발해국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지질학자들은 추측한다. 하지만 먼바다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은 국토가 늘어나는 좋은 일이 된다. 같은 화산이지만 지역과 시대에 따라 재앙 또는 축복으로 나누어지니 이것이 화산이 가진 두 얼굴이라고 할까.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0/20190620037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