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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식당 직접 운영하려다 두손 든 학생회, 할머니께 다시 맡아달라고 사정했지만…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6.22 03:01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지난 주간에는 다섯 차례 지방 강연을 다녀왔다. 목요일 오전에는 2000명 정도가 모일 것이라는 얘기여서 그 전날 도착해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오래전 자주 들르곤 한 호텔이었다. 크지는 않으나 품격을 갖춘 곳이다. 아침에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손님들은 많지 않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혼자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조찬 메뉴를 보면서 양식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한식 메뉴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좋아하지 않는 해장국을 주문했다.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칸막이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가벼운 케이크나 커피로 보충하려고 했으나 서빙하는 사람이 없었다. 3~4명이 앉아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주인 여자에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손이 딸려서 안 되니까 10시까지는 할 수 없다면서 다른 손님 쪽으로 갔다. 먼저 앉아 있던 손님들 얘기가 생각났다. 정부에서 52시간 근무 규정,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개편하라는 지시, 최저임금제의 법제화 등이 하달되면서 주인 측이 견딜 수 없어 종업원들을 하나 둘 떠나게 했고 지금은 5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하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반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대기하던 차를 타고 강연장으로 떠났다. 강연 전에 커피나 한 잔 마시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차 안에서 나 혼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 웃었다. 총학생회장을 선출하게 되면 입후보자들이 공약을 발표한다. 한 후보가 "내가 당선되면 학생식당을 직접 운영해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남는 이익금은 장학금으로 쓸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가 당선됐다. 그때까지 식당을 운영해 오던 할머니 격의 여주인을 해직시키고 새 주인을 공모했다. 몇 사람이 와 보고는 그런 조건으로는 운영할 수 없다고 모두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전 주인에게 다시 맡아주기를 청했다. 그 할머니는 "시중에 식당 둘이 있고 여기서는 우리 학생들이 값싸게 먹을 수 있도록 봉사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나이도 많아 그만두고 떠나야겠다"고 했다. 그동안 수입은 없었으나 젊은 학생들을 위해 봉사한 것이 감사하다면서 떠났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음식값은 올라가고 학생들만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회장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같은 공약은 내걸지 않았다. 학생들은 한 번쯤 그런 실수를 해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이 후일의 교훈이 되는 것이 교육이다.

우리 국민은 정부의 연속성과 동일성을 기대하고 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그 동일성이 무너지면 더 큰 혼란을 겪는 다. 대화나 공감대 없이 법과 힘으로 요구할 때 더욱 그렇다. 물론 목적의 공통성은 있다. 더 많은 국민의 행복이다. 그렇다고 해도 힘과 법이 앞서고 사랑의 질서가 없으면 신뢰 없는 복종을 요구하게 된다. 부모는 형과 동생들이 함께 잘 살기를 바란다. 명령으로 형의 것을 빼앗아 동생에게 주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사랑의 질서가 행복의 최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1/20190621026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