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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설연휴 낡은 사무실 의자서 스러진 우리 '응급의료 영웅'을 추모합니다

남정미 기자  손호영 기자

입력 2019.02.08 03:00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지난 4일 숨진채 뒤늦게 발견


응급 의료에 헌신해온 윤한덕(51·사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4일 오후 6시쯤 1평(3.3㎡) 남짓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근무하던 책상 앞 의자에 앉은 모습이었다. 의료원 본관에서 200m 정도 떨어진 행정동 2층 그의 사무실은 컴퓨터 책상, 책장, 회의 테이블 등이 빼곡했다. 사무실 한쪽 커튼을 젖히면 그가 2~3시간씩 쪽잠을 자던 낡은 1인용 침대가 있다. 침대 위에는 얇은 홑이불이 구겨진 채로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웬만한 간이침대보다도 못한 이 낡은 침대가 제일 큰 유품인 셈"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7일 SNS에 추모글을 올리면서 이 침대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면서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썼다.

그는 명절을 앞둔 지난 1일에도 오후 8시쯤 동료와 저녁을 먹은 후 "좀 더 일을 보겠다"며 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설에 귀성하기로 해놓고 주말 내내 연락이 닿지 않자 지난 4일 사무실로 찾아온 아내가 숨진 남편을 발견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새벽에 한 시간 단위로 순찰을 하는데, 센터장실은 평소에도 불이 켜진 경우가 많아 명절 연휴 불이 켜져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그의 사인이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심장사'라고 했다. 작년 말 정신 질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이어 세상을 밝히던 또 한 명의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


윤 센터장은 응급 의료 전용 헬기를 도입하고, 응급 진료 정보망 시스템을 만드는 등 국내 응급 의료, 외상 의료, 재난 의료 체계의 토대를 다졌다. 1994년 전남대에 처음 생긴 응급의학과 1호 전공의로 지난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 당시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했고, 2012년 센터장이 됐다. 전국 17개 응급의료지원센터를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에서 재난 상황을 감시하고 지원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왔다. 고임석 국립중앙의료원 기조실장은 "누가 시켜서는 그렇게 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늘 응급 상황을 걱정했다. 2년 전 추석 연휴 무렵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오늘은 몸이 3개, 머리가 2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 필요할까?' 그는 "응급 의료는 그것(긴 연휴)만으로도 재난"이라고 했다.

이날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 등 정부 인사들과 의료계 등에서 보낸 근조 화환이 줄을 이었다. 빈소를 찾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응급 환자들이 어느 순간이든 어디에서든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응급 의료 체계를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오랜 친구인 홍은석 울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는 "그는 응급 의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원칙주의자였다"면서 "침대 하나 있는 허름한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일하고 고민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자신이 쓴 책 '골든아워'에서 그에 대해 '대한민국 응급 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면서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 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썼다. 일반인들의 조문도 눈에 띄었다. 온라인과 SNS상에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한창의 나이에 과로사를 하셨네요' '당신 덕에 많은 환자분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어깨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08/20190208002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