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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한국의 老鋪] 100년 가게 100년 기업 생존 DNA를 찾아

주간조선 [2425호] 2016.09.26

조동진  기자 zzang9@chosun.com



시장은 전쟁터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지 않을 뿐. 그런 시장에서 인간의 100년 장수보다 더욱 힘든 것이 가게와 기업의 100년 생존이다. 하루에도 수백 개가 넘는 새로운 가게와 기업들이 저마다의 성공을 꿈꾸며 세상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가게와 기업들만큼 기존 가게와 기업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기업 정보 제공업체 재벌닷컴이 2014년 조사한 자료가 있다. 2013년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자산 100억원이 넘는 기업 3만800여개의 ‘기업 연혁’을 살펴보니, 이들 기업의 평균 수명이 불과 16.9년이었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온 한국 시장. 자산이 100억원을 넘는 대형 기업들조차 20년은 고사하고 채 17년도 존속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가게나 기업들의 생존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렵지 않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창업기업 10년 생존율 9%
   
한국에서 가게와 기업의 생존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보여주는 자료는 또 있다. 통계청과 기획재정부 등이 조사한 자료들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에서 창업한 기업(법인)의 3년 평균 생존율이 41%에 불과했다. 가게 혹은 기업 10개 중 창업 후 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이 6개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 창업기업의 5년 평균 생존율은 이보다 더 암울하다. 무려 75%가 폐업해 문을 닫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간을 더 넓혀 창업기업들의 10년 평균 생존율은 더욱 더 암담하다. 불과 9%만이 살아남는 것으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창업기업이 10년을 생존할 확률이 불과 9%, 바꿔 말하면 10년 안에 91%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말이다.
   
사실 가게와 기업의 이 같은 낮은 생존율 문제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미국의 격주간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이 불과 13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업들 중 80%가 설립 후 30년 만에 사라진다는 통계까지 제시되고 있다.
   
이런 현실이기에 ‘100년 가게·100년 기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소한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100년 가게·100년 기업’의 생존 DNA를 통해 탄탄하고 건전한 시장 형성은 물론이고, 구호로만 떠들어왔던 지속가능한 건강한 성장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100년 가게·100년 기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가게와 기업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자본 논리 앞에서 이렇게 작지만 그래도 지켜가야 할 가치를 지닌 가게와 기업을 발굴하고자 하는 노력 역시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 이들이 정당하게 경쟁해 생존할 수 있게끔 해주는 사회적 공감대 역시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란 점을 부정하기가 힘들다.
   
1906년 처음 등장해 거의 한 세기 가까이 한국인의 삶과 함께했던 ‘이명래 고약’을 보자. 제조법 전수와 후계자 양성의 어려움, 또 시장 논리와 돈을 앞세워 물밀듯 밀려든 대형 자본의 파도 속에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다 2002년 결국 명래제약의 도산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명래 고약만이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 서점이던 ‘종로서적’도 있다. 1907년 서울 종로에서 예수회교서적이라는 기독교서점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권위주의 시대를 거쳐 민주화까지 역사를 함께하며 한국인의 지식창고 역할을 해왔던 종로서적. 그렇게 한국인의 지적 보고라는 상징성을 가졌던 종로서적이었지만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 계열 대형서점들과 인터넷서점 열풍에 밀려났다. 결국 설립 100년을 5년 앞둔 2002년 문을 닫고 말았다. 그나마 규모를 갖췄던 이명래 고약과 종로서적이 이렇게 사라져가는 동안, 이들보다 작고 덜 주목받았던 우리 동네 골목 곳곳의 작은 가게와 기업들은 무수히 사라져갔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디선가 문을 닫고 있는 오래된 가게와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가게와 기업을 지켜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그 자체로 문화이자 전통이 된 가게와 기업들이 분명히 있다. 자본과 시장 논리를 넘어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작은 역사와 문화의 한 조각을 잃고 마는 그런 가치를 지닌 가게와 기업들이 분명히 있다.   
   
‘200년 가게·200년 기업’을 향해
   
문화의 나라, 전통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를 보자. 프랑스는 2005년부터 국가가 나서 뛰어난 기술과 전통, 문화적 가치와 프랑스적 정체성을 지닌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EPV(Entreprise du Patrimoine Vivant)’라 불리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 기업 국가 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 정책은 지켜가야 할 오래된 가게나 기업 지원을 통해, 이들 노포(老鋪)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도하고 이런 지속성과 성장성을 다른 가게와 기업들로 확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렇게 노포를 지켜가는 프랑스의 사회적 공감대가 결국 프랑스의 기업 경쟁력과 시장 가치를 키우고 있다. 또 문화와 전통의 강국으로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장인(匠人)의 나라 독일과 자본주의의 고향으로 불리는 영국, 작지만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기업들이 즐비한 스위스 등도 프랑스 이상으로 가치 있는 노포의 발굴과 지원에 열심이다. 이들 유럽의 부국(富國)들은 문화적 가치와 기술력을 동시에 품고 있는 오래된 가게와 기업들을 연구하고 있다. 수대를 이어온 그들의 기술력과 생존 노하우를 면밀히 분석해 사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포의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끌어올리고 있는 곳은 비단 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다. 
   
100년 이상 된 가게와 기업만 수만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노포의 나라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수세대에 걸쳐 차곡차곡 축적해온 기술과 적게는 100년 길게는 수백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겪었을 위기들을 버텨온 노하우가 바로 일본 노포들이 갖고 있는 힘이다. 이런 작은 노포들의 힘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일본의 장인(匠人)문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 작은 노포들의 힘이 경제대국 일본을 만들어낸 숨겨진 바탕이 되어준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작지만 오래된 가게와 기업들이 품고 있는 가치를 이제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오랜 시간을 생존하고 버텨온 그들의 DNA와 노하우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손실이다. 우리도 이제는 그런 손실을 줄여 보자.
   
주간조선은 앞으로 한국의 노포들을 찾아 그들이 품고 있는 문화와 전통, 그리고 그들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소개해 보려 한다. 그렇게 찾아낸 노포들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것, 그리고 그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만들어온 지속 가능한 성장 노하우들을 재평가해 보려 한다. ‘100년 가게·100년 기업’이 ‘200년 가게·200년 기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힘을 이번 주간조선의 기획을 통해 발견해 보려 한다.


출처: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42510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