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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아무튼, 주말] 북한에도 'SKY 캐슬'… 1% 핵심 상류층, 아이가 다섯 살 되면 '사교육 경쟁'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2.02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금요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아내와 애들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아내가 'SKY캐슬'에 나오는 엄마 중 자신이 누구와 비슷한 것 같으냐고 물으니 애들이 "쌍둥이 엄마와 비슷하다"고 했다.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무슨 얘기냐고 물어봤더니 요새 남한 '금수저'들의 사교육열을 다룬 드라마 얘기라고 했다.

문득 '평양판 SKY캐슬'이 떠올랐다. 공산주의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은 신분 사회다. 인구의 1%도 안 되는 핵심 상층 계층이 특권을 누린다. 엘리트층으로의 수직 상하 이동은 거의 없고, 엘리트층 내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수평식 좌우 이동만 있다. 핵심 계층 자녀가 부모처럼 핵심 엘리트층에 들어가려면 어릴 때부터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 평양의 SKY캐슬은 한국처럼 거주지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이나 평양외국어대학 같은 명문대를 졸업한 여학생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여 동창들끼리 시집 잘 가는 경쟁이 벌어진다. 시집가기 경쟁이 일단락되면 이젠 자식 교육 경쟁이 시작된다. 엄마의 불필요한 승벽심(勝癖心) 탓에 아이들이 힘들고 돈은 쓸데없는 데로 빠져나간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 본격적인 '직선주로'에 들어선다. 북한 엘리트들은 글을 배우기 전 음악부터 배워야 두뇌 발달에 좋다고 생각한다. 다섯 살이 되면 피아노를 사놓고 가정교사를 둬 가르치든지 음악유치원에 넣는 집이 많다. 이런 유치원에 들어가려면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결국 조부모나 부모의 권세와 돈이 작용한다.

내 경우 첫째 때는 해외 근무 전이라 음악유치원에 넣을 재력이 없어 못 보냈다. 둘째 때는 해외 근무를 마친 후라 경쟁에 뛰어들어 평양 경상유치원 피아노과에 입학시켰다. 지난 2012년 5월 김정은이 경상유치원을 돌아보는 장면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배우는 걸로는 '톱 10'에 들어갈 수 없어 피아노 가정교사까지 붙였다. 어머니가 유치원 밖에서 기다렸다가 오후 5시에 끝나면 애를 픽업해 가정교사 집으로 데려갔다. 여기선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을 한 시간 동안 연습시킨다. 이렇게 사교육을 하니 1년 뒤 아이가 유치원 평가 경연에서 진짜 '톱 10'에 들어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유치원 원장이 우리 애를 중앙당에 올려 보내는 피아노 영재 명단에 넣으려 한다며 부모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거기 들어가면 유치원에서 심화 교육을 해주니 사교육은 필요 없지만 아이의 장래가 직업 피아니스트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둘째가 내 뒤를 이어 외교관이 되길 바랐다. 결국 영재 명단에 넣지 말아 달라고 원장에게 부탁했다.

북한판 SKY캐슬의 다음 단계는 외국어 학원이나 제1중학교와 같은 수재 교육과정에 자녀를 보내는 것이다. 이 경쟁은 보통 소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된다. 북한에는 각 도와 특별시에 수재 교육을 위한 외국어 학원과 제1중학교가 하나씩 있고 평양시에는 구역마다 제1 중학교가 있다. 이런 학교로 진학해야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 가장 큰 혜택은 일반 중학교와는 달리 집단체조나 농장 동원과 같은 동원에서 면제된다는 점이다. 수재 학교에 들어가려면 소학교 3학년부터 혁명 역사, 국어, 수학 같은 과목들의 입학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돈 있는 집은 가정교사를 둔다.

나는 두 애를 다 평양외국어학원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말을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말 고삐 잡을 시종을 부리고 싶다, 즉 한 가지 이루면 더 큰 욕심을 갖게 된다는 속담)'고 영국 같은 선진국에 데리고 나가 공부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에서 근무하려고 노력했다. 막상 영국에서 애들을 공부시키고 보니 그다음은 자유를 주고 싶었다.

평양 SKY캐슬의 승자로 남기 위한 부모로서의 사명은 애들을 대한민국으로 데리고 와 명문대에 넣는 것으로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사람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제는 한국의 SKY 캐슬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젠 애들이 좀 편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01/20190201015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