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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북에도 검사·변호사 있지만 칼자루는 노동당이 쥐고 있다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10.12 03:00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요즘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찬반 집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 매체에선 "서울에서 박근혜 탄핵 이후 처음으로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대규모 촛불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며 "2년 반 만에 거리를 다시 메운 촛불은 국민 위에 선 검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검찰 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법 구조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는 것 자체가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전관예우 때문에 판검사들이 현직에 있을 때보다 퇴임 후 변호사가 됐을 때 돈을 더 많이 번다고 들었다. 북한도 한국처럼 '사'자 직업을 가진 사람이 먹고살기 편하다.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을 인기순으로 꼽는다면 검사, 판사, 운전사, 의사, 변호사다. 북한에서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려면 사법고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대학을 졸업하면 된다.



한국은 '검찰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검사의 힘이 크다지만 북한 검찰은 당의 지도를 받기 때문에 당 일꾼 밑에 있다. 한국의 법 구조는 헌법, 국회가 정하는 법률, 대통령령, 자치 단체의 법규 등 순위로 내려가지만 북한은 김씨 일가의 교시와 말씀, 당 규약, 헌법, 각종 법규 순으로 내려간다. 헌법에 당의 독점적 지위를 규정하고 노동당이 국가기관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성문화해놓고 있으나 실제로는 수령의 영도하에 통치되는 체제다. 당 중심 체제인 중국이나 베트남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법 체계가 다르다.


중앙재판소를 정점으로 그 밑에 (직할시)재판소, 지방 인민재판소가 있다. 이와 별도로 특별재판소인 군사재판소철도재판소가 있다. 재판은 3급 심제를 원칙으로 판사 1명, 인민 참심원(배심원 같은 것) 2명이 수행한다. 북한 검사도 범죄 수사와 공소 제기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한국 형사소송법상의 검사와 큰 차이가 없으나 재판 집행에 대한 지휘와 결론은 사전에 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다. 그런데 북한 변호사는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보다는 당의 지시를 관철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내가 북한 외무성에서 근무할 때 우리 부서에서 덴마크 주재 북한 대사관에 현금 3000달러를 외교 행낭에 넣어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런데 현지 북한 공관에서 외교 행낭을 열어 보니 돈 봉투가 없었다는 전보를 본부로 보냈다. 외무성 담당 직원은 분명 자기는 돈 봉투를 넣었다고 했고, 덴마크에서 행낭을 개봉한 직원은 돈 봉투를 못 봤다고 했다. 도무지 누가 거짓말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덴마크가 지리적으로 머니 먼저 평양 외무성에서 당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서 당 비서는 외무성 담당 직원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면 몇 달 동안 농촌에 나가 무보수 노동하는 것으로 처리해 주겠으니 이실직고하라고 했지만, 자기는 돈 봉투를 넣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하는 수 없이 당 회의에서는 이 사건을 법기관, 즉 검찰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그 직원은 검찰소에 불려간 지 하루 만에 자기가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당 회의에서는 말로 비판하지만 검찰소에서는 잠도 재우지 않고 폭력도 쓰니 웬만한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검찰소에서 외무성 당위원회로 징역 10년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를 물어왔다. 다행히 당시 외무성 당 비서가 마음 좋은 사람이어서 재판소와 검찰소에 1년으로 감형해달라고 했다. 결국 재판소, 검찰소는 당의 의견대로 1년을 선고하기로 판결문을 미리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 재판 과정에 선 검사가 법대로 10년 징역형을 제기했다. 이때 변호사가 나서서 피고인이 군대에서 10년간 군 복무를 했고 훈장도 여럿 있으며, 가장인 점 등을 나열하면서 감형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1년 징역으로 판결 났다. 재판관도 있고 검사도 있으나 칼자루는 당이 쥔 셈이다. 앞으로 통일되면 이런 관행에 젖어 있는 북한 법조계를 재교육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1/20191011017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