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입력 2022.10.19 03:00
페일오버(故障切換) 안돼 ‘초연결’이 ‘초먹통’ 됐다
미래를 닫지 않고 열려면 실록의 생존방식 배워야!
거기 ‘오래된 미래’가 있다
# 지난달 25일부터 이십여 일 가까이 북한이 항공, 방사포, 미사일로 거의 연일 다중 위협을 가해와도 별 동요 없던 대한민국이 지난 주말 카카오 등의 부가통신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키자 그 즉시 난리가 났다. 사실상 전 국민이 사용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카카오톡을 위시해 이에 기반한 각종의 국민 실생활 부가통신서비스 플랫폼들이 먹통이 되자,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스마트폰 생태계도 작동을 일시나마 멈췄던 것이다. 혹자에게는 카톡 등의 디지털 족쇄에서 해방된 ‘디톡스’의 시간이었다고 하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는 먹고사는 일 처리가 안 돼 죽을 맛인 시간이었다. 사실상 우리처럼 스마트폰 생태계로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은 포탄과 미사일이 난무하는 물리적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부가통신서비스’가 먹통이 되는 ‘통신전’ 하나만으로도 끝장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실하게 방증된 셈이다.
# ‘초연결 사회’ 대한민국이 순식간에 ‘초먹통 사회’가 되어버린 원인에 대해 세부적으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적지 않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고 명백하다. ‘페일오버(failover)’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페일오버’란 컴퓨터 서버, 시스템, 네트워크 등에서 이상이 생겼을 때 이와 동일한 다른 예비 시스템으로 자동 전환하는 기능이다. 우리 언론에서는 흔히 ‘이중화’라고 쓰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삼중화, 사중화, 오중화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일오버’란 용어를 거의 유일하게 자국어로 번역해 사전에 올리고 있는 나라는 중국인데 ‘고장절환(故障切换)’ ‘고장전이(故障轉移)’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다. 원어의 의미를 실체적으로 알고 번역한 것으로 사실에 가장 부합하는 번역어다.
# ‘페일오버’ 즉 ‘고장절환’의 역량이 곧 초연결 사회의 기본 바탕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는 비록 아날로그 영역이지만 진즉에 ‘페일오버’에 상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실행하고 있었다. 실록을 백업해서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하고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며 이를 지속 관리했던 것이야말로 ‘페일오버’ 시스템의 정직한 구현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조선 초기부터 실록이 완성되면 필사본의 오·탈자를 방지하기 위해 활자로 4부를 인쇄해서 한양의 춘추관에 한 부를 두고, 나머지 3부는 충주, 전주, 성주에 각각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중화’가 아니라 ‘삼중화’ 이상을 한 셈이다. 그리고 한 번씩 꺼내 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실시해 곰팡이가 피거나 좀이 스는 것을 방지했다. 오늘날 구글 등에서 일년에 두 번 정도 ‘페일오버’ 시스템을 일제 점검하듯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는 사고에서도 앞서 말한 ‘포쇄’를 실시해 백업된 콘텐츠의 건재를 확인했던 것이다.
# 그뿐이 아니었다. 모든 위험 요소를 상상했다. 1466(세조12)년 11월 17일 자 실록에 따르면, 당시 대사헌 양성지(梁誠之)가 충주, 전주, 성주 등의 실록 보관 장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상소를 올렸다. 춘추관은 한양 도성 안에 있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삼도(下三道)에 있는 충주, 전주, 성주 등 세 곳의 사고는 관청 옆에 붙어 있어 화재의 위험이 크고, 외적이 침입하면 소실될 가능성도 크니, 인적이 드문 궁벽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전주 사고는 지리산으로, 성주 사고는 금오산으로, 충주 사고는 월악산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상소의 주장이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전주 사고 본을 제외한 모든 사고의 실록들이 소실되어 불타버리고 말았다. 전주 사고본 역시 전주의 유생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 등이 사고의 실록들을 전부 내장산으로 옮겼기에 간신히 지킬 수 있었다. 결국 양성지의 선견 있는 상소가 있은 지 140여 년이 지나서야 한양의 춘추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첩첩산중인 마니산·오대산·태백산·묘향산에 각각 새로 사고(史庫)를 마련하고 전란 중에 살아남은 전주사고본을 재출간해서 실록 5부의 분산 보관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조선 왕조 실록의 ‘페일오버’ 시스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항상 실재하는 위기에 대응하며 변화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남방으로부터의 침략 위기가 지나간 후 이번에는 북방으로부터 후금(청)이란 새로운 위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조선 조정은 1614(광해군6)년 북쪽에 있던 묘향산 사고본을 남하시켜 전북 무주의 적상산으로 옮겼다. 이런 대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양의 춘추관 사고본은 이괄의 난(1624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거치면서 모두 불타 소실되어 버렸다. 그리고 강화도에 있던 마니산 사고 역시 1653(효종 4)년에 불이 났지만 간신히 전체 소실만은 면했다가 25년이 지난 1678(숙종 4)년에야 새로 지은 같은 강화도 내의 정족산 사고로 이전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다사다난(多事多難)을 겪으며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정족산 네 곳의 사고에 분산 배치되어 왕조가 망할 때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같은 화재에 노출되었지만 네이버는 ‘페일오버’가 되고, 카카오는 그것이 안 됐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네이버와 카카오는 매출 규모 면에서 각각 6조8175억원과 6조 1366억원으로 비슷하지만, 페일오버 시스템 구축 등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각각 350억원과 140억원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음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불이 날 줄은 몰랐다”는 식의 안이함이 아니라 그 옛날 “관아 옆에 있으면 화마의 위험이 커지니 더 궁벽한 곳으로 가야 한다”는 양성지의 간언처럼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마저 대비하며 페일오버 시스템을 손보고 재구축해야만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카카오 등은 현재 법과 제도상 부가통신서비스로 분류되지만 더 이상 ‘부가(附加)’ 차원이 아니라 ‘기간(基幹)’을 넘어서 우리 일상의 디지털 스마트폰 생태계를 지배하는 플랫폼 왕국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이지 더 철저하게 개선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오래된 미래’로서의 조선왕조실록의 ‘페일오버’ 시스템을 다시 들여다본 까닭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2/10/19/KIYNRWGGQNCNRJKFZ3PIXI4Q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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