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석 달간 수거한 현수막이 200만장

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2023.06.15. 20:20 업데이트 2023.06.16. 00:52

일러스트=이철원

정당 현수막 공해가 점입가경이다. 선거철도 아닌데 전철역, 버스 정거장, 아파트 입구 등에는 어김없이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12월 정당 현수막은 지자체 허가 없이 걸 수 있게 법을 개정한 이후 생긴 살풍경이다. 내용은 정치적으로 악을 쓰거나 비아냥대는 것이 대부분이다. 올봄만 해도 주요 정당이 내건 것이 많더니 요즘엔 이름도 생소한 군소정당들이 내건 현수막이 갈수록 늘고 있다. 현재 중앙선관위엔 48개 정당이 등록돼 있다.

▶환경부가 올 1~3월 정당 현수막을 포함해 전국 지자체가 수거했다고 보고한 현수막을 집계했더니 무려 1300t이었다. 현수막 하나 평균 무게가 600g인 것을 감안하면 200만장이 넘는다. 2022년 대선 때 수거한 현수막 1100t보다 많다. 흉물이나 다름없는 정당 현수막 하나 만드는 데 10만원이 들어간다. 이 비용은 국고 보조금이나 정치 후원금으로 충당하니 세금 낭비도 엄청난 셈이다. 민원이 속출하자 지난 4월 행정안전부가 정당별 현수막 개수를 읍·면·동당 1개로 제한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였다.

▶정당 현수막뿐 아니다. 언제부턴가 주요 그룹 본사가 있는 곳은 총수를 비난하는 온갖 현수막이 하나의 풍경이 됐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들을 비하하고 해당 기업을 악질 기업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한 기업인을 ‘노동자 냉동폐기 범죄자’라고 쓴 현수막도 있었다. ‘살인자’ 등도 예사다. 서울 광화문, 강남역, 여의도, 종로, 공덕역 등 주요 그룹 본사가 있는 곳은 어디서나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급기야 아파트 단지에서도 현수막 전쟁이 일어났다. 서울 대치동 선경아파트에는 현재 입구부터 단지 안 가로수 사이까지 ‘관리소장 물러나라’ ‘민노총 세력들은 출입을 금지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 수십개가 어지럽게 걸려 있다. 지난 3월 이 아파트 경비원 등이 사망한 이후 일부가 민노총에 가입한 다음 붙은 현수막과 아파트 주민들이 맞대응한 현수막이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자기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인터넷, 소셜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현수막 전쟁은 시대착오다. 보지 않을 수 없어 폭력으로 느낄 때도 있다. 아침마다 살벌한 문구를 보면서 출근할 때 마음이 불편하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에서는 현수막이나 벽보를 거의 볼 수 없다. 국회에는 개정 옥외광고물관리법에 문제가 많다며 재개정안이 여러건 올라와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이 법안을 처리해 현수막 전쟁이라는 구태를 끝내야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6/15/ROL3NJXC2FHI3AOOX6M5FK7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