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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 대륙의 虛實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8.02.09. 03:12

덩샤오핑

무실(務實)이라는 말이 있다. “실질()에 힘쓰라()”는 주문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중국인은 반대의 조어, 무허(務虛)라는 말을 잘 쓴다. 아예 ‘무허 회의’라는 말도 만들었다.

중국으로서는 1978년이 매우 중요했다. 복권에 성공한 덩샤오핑(鄧小平·사진)이 11기 3중전회(中全會·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의 약칭)에서 개혁·개방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3월 덩의 주재로 회의가 하나 열렸다.

향후 중국의 이념적 행보를 다뤄 '무허'라는 명칭을 얻은 회의다. 단어를 글자 그대로 풀면 이상하다. 허망함에 힘을 쏟으라고? '무실'의 대척점에 놓였다고 보면 그렇게 풀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보완의 관계라면 풀이가 달라진다.

개혁·개방을 결정한 덩샤오핑에게는 큰 장애가 생겼다. 자유화의 바람이 불어 혼란스러운 양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열린 '무허' 회의에서는 중대 결정이 내려졌다. 이른바 '4개 기본원칙(四項基本原則)'이다.

개혁·개방을 펼치되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중국이 이어오는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틀이 만들어진 계기다.

이 '무허'는 이론·틀·토대 등을 우선 지향한다. 구체적인 수치나 항목보다는 추상적이면서 개념적인 것을 다루는 작업이라고 보면 좋다. 전체 흐름과 형세(形勢) 등을 살펴 방향을 잡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회의에는 숫자와 통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책의 옳고 그름, 방향의 정오(正誤) 등을 따진다. 우리 식으로 보자면 전략(戰略)을 다루는 자리다. '무실'은 그에 비해 전술(戰術)이 대상이다. 실리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 중국 공산당과 기업들은 '무허' 회의를 즐긴다.

이는 ‘전략’으로 큰 판을 들여다보면서 ‘전술’로써 세부의 항목과 변수에 대응하려는 자세다. 그 근간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전쟁의 사유, 곧 모략(謀略)이다. 중국은 그런 모략의 전통이 충만하다. 대륙의 허풍(虛風)은 사실 칼바람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8/20180208032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