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8] 권모와 술수의 바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9.02.15. 03:12

제왕(帝王)이 머무는 곳을 궁()이라고 한다. 깊고 넓어 보통은 구중궁궐(九重宮闕), 구중심처(九重深處) 등으로도 적는다. 그러나 어딘가 음습한 분위기도 풍긴다. 깊고 넓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그악한 다툼 때문이다.

땅 위의 최고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이 벌이는 경쟁이니 지독하기 짝이 없다. 황후와 비빈, 관료와 제왕의 인척(姻戚), 궁녀와 내시(內侍) 등 다양한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끔찍한 방법이 다 펼쳐진다.

독을 타서 상대를 죽이는 독살(毒殺)은 외려 평범하다. 반역의 틀에 가둬 멸문멸족(滅門滅族)을 이끌어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추잡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간계(奸計)가 온갖 형태로 펼쳐진다.

그 토대는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라고 하는 중국의 오랜 사고 패턴이다. 정면에서 당당하게 승부를 가리는 싸움법이 아니다. 기만(欺瞞)과 사술(詐術)이 주조를 이루는 암투(暗鬪)에 가깝다.

중국 역사에서 권모와 술수가 가장 빈발했던 곳이 '궁정(宮廷)'이다. 제왕의 개인적인 공간인 궁궐의 안뜰, 즉 내정(內廷)을 일컫는 단어다. 요즘 중국 TV 드라마의 대세는 궁정극(宮廷劇)이다.

역대 왕조의 궁중 암투를 소재로 다루는 내용들이다. 음험하지만 흥미진진해서 대중은 열광한다. 이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등 고전소설, 각종 무협지와 무술 영화 등의 전통을 잇는 중국 특유의 현상이다.

최근 중국 공산당은 이를 제재할 움직임을 보였다. 궁정극의 '5대 죄악'을 거론하면서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우선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핵심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궁극적 의도는 체제 안정에 있음을 내비쳤다.

권모와 술수는 중국 문명의 깊고 어두운 ‘그늘’이다. 지독한 이기(利己)와 현세적 가치관에 사람을 가두기 때문이다. 이를 비판하는 일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기왕이면 문명적 차원의 더 크고 너른 성찰이어야 바람직하겠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4/20190214033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