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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9] 江湖라는 중국의 민간 세계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9.03.01. 03:07

묘당(廟堂)이라는 단어가 있다. 왕실 제사를 벌였던 종묘(宗廟)와 정치를 논했던 명당(明堂)을 합성한 말이다. 나중에는 나랏일을 집행하는 조정(朝廷)의 뜻으로 발전했다. 이 묘당의 대척점이 지금도 실재하는 ‘강호(江湖)’다. 유래에는 여러 풀이가 있다. 그러나 큰 흐름으로 보면 나라 행정과 정치가 벌어지는 곳으로부터 떨어진 일반인 삶의 터전이다.

형식과 절차에 구애받지 않는다. 정치적 구속력이 약해 자유롭다. 그러나 나름대로 고단하다. 치열한 생존의 경쟁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수준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때로는 매우 험악하다. 언어도 공식적인 말과 사뭇 다르다. 은어(隱語)가 풍성하다. 강호에서 쓰였던 말은 달리 순전(唇典)이라고 했다. 그와 발음이 유사해서 보기 좋게 춘점(春點)으로 적거나, 시어(市語) 또는 항화(行話)라고도 불렀다. 예를 들면 어떤 목적으로 사람을 잡아두는 인질(人質)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표()로 표현한다. 그 인질을 묶어두면 방표(綁票), 살해한다면 '찢다'의 뜻을 곁들여 시표(撕票)라고 적는 식이다.

강호를 구성하는 직업인은 많다. 상인(商人)과 걸인(乞人), 재주를 파는 예인(藝人), 숨어 사는 은자(隱者), 점술가, 무뢰배, 도적 등이다. 협객(俠客)이 나타나 정의를 구현한다는 설정은 무협지식() 상상에 불과하다. 정치나 행정, 제도의 딱딱한 틀로부터 벗어나 있어 중국 민간의 실제 감성과 사고를 잘 드러내는 세계다. 그래서 묘당이 중국의 얼굴이라면 강호는 그 몸체다. 개혁·개방 이후 짝퉁 제품 양산에 이어 이제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기에 이른 '산채(山寨) 문화'가 바로 그런 중국 강호의 소산이다.

국가의 요소를 키우고 민간의 그것을 줄인다는 국진민퇴(國進民退)가 요즘 중국 집권 공산당의 큰 흐름이다. 그에 따라 중국 강호의 고수(高手)들이 긴장한다. 관이 짓누르면 민간이 반발한다는 관핍민반(官逼民反)의 성어가 있음에도 중국 공산당은 늘 자신만만한 모양새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8/20190228034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