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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4] 예절 뒤에 숨긴 칼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9.04.19. 03:13

술을 마셔도 혼자 마시는 독작(獨酌)보다는 상대와 어울리는 대작(對酌)이 낫다. 술자리에서 흔히 쓰는 말 ‘권커니 잣거니’의 뜻, 수작(酬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말은 요즘 ‘웬 수작이냐’고 눈 부라릴 때의 쓰임으로 전락했지만…. 잔을 적당히 채우면 짐작(斟酌)이다. 앞뒤를 잘 헤아려 술잔을 채우면 참작(參酌)이다. 마침내 알맞게 잔을 채우면 작정(酌定)이다. 누군가 내게 잔을 권했으면 돌려서 따라줘야 한다. 보수(報酬)와 응수(應酬)다. 제사를 올리거나 남과 교제하는 예법(禮法)에서 나온 조어(造語) 행렬이다. 음주 예절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낱말을 만들어 낸 곳이 중국이다. 그 점에서 중국은 세계적이다. ‘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 서적이 쏟아졌고, 예를 정치의 근간으로 삼자는 예치(禮治)의 주창자 공자(孔子)의 유가(儒家)는 중국인의 관념을 2000년 넘게 지배했다.

예전 우리도 썼던 말에 동가(東家)라는 단어가 있다.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을 가리킨다. '동녘 동()'이 들어간 유래는 고대 중국 예법과 관련이 있다. 주인은 동편, 손님은 서편에 서도록 했던 옛 예제(禮制)의 유산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요즘에도 집주인을 방동(房東)으로 적는다. 주식을 보유한 주주는 고동(股東)이다. 동쪽 길에 있는 주인이라는 뜻의 동도주(東道主)는 행사와 경기 등의 주최자를 가리킨다.

오랜 예법의 전통을 지닌 곳이라 중국의 예절은 복잡하며 화려하다. 국가 단위, 또는 지방정부 차원의 의전(儀典)은 특히 거창하고 장중(莊重)하다. 한국인 대부분은 여기에 흠뻑 빠져든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성어가 있다. 선례후병(先禮後兵)이다. 처음에는 예의로써 상대하지만 곧 싸움을 벌인다는 뜻이다. 번잡한 예절 이면에는 칼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형식에 가린 내용’ ‘복잡한 겉면에 숨은 의도’는 우리가 중국을 살필 때 늘 눈길을 둬야 하는 대목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8/20190418037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