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영화 ‘건국전쟁’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2.02. 20:18 업데이트 2024.02.02. 23:16

일러스트=이철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향한 미국인의 사랑과 관심은 시대를 초월해 뜨겁다. 전기를 읽고 영화와 드라마로도 감상한다. 2000년대 들어서도 영화 ‘조지 워싱턴’(2000)과 ‘자유를 향한 싸움’(2006) 등이 만들어졌다. TV 드라마로도 방영된다. 일본에선 봉건제를 허물고 근대국가를 세운 메이지 일왕과 혁명가들이, 중국에선 마오쩌둥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건국 주역에 대한 당연한 관심이다.

▶반면 한국에선 ‘건국 대통령 이승만’ 영화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대통령인데도 그렇다. 신상옥 감독이 1959년 만든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이후 60년 넘게 그의 생애를 다룬 작품은 스크린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유튜브에서 ‘이승만’을 검색하면 ‘분단의 원흉’ ‘독재자’라는 키워드를 담은 영상이 쏟아진다.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고 대한민국을 세웠으며 공산화로부터 나라를 지켰고 한미 동맹으로 번영의 초석을 다진 거인의 삶이 그렇게 지워졌다.

▶폄훼당해 온 이승만의 생애를 되살려낸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1일 개봉됐다. 첫날 5400여 명이 관람했다. 소셜미디어에는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지적 임팩트가 강한 작품’ 등의 호평이 줄을 이었다. 영화 티켓을 찍어 올리는 인증 릴레이도 이어진다. 영화를 만든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 영화 만든다니까 친척들조차 ‘집안 망하는 꼴 보려 하느냐’고 했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반겼다.

▶84학번인 김 감독도 그 시대 운동권처럼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1990년대까지도 평양 시내에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북한이 이승만을 미워하는 이유’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한 한국사 유일의 인물’로 이승만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팩트만 보여줘도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바뀔 것이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건국전쟁’ 포스터를 부착한 버스 8대가 지금 서울·부산·대전·광주·인천의 거리를 누비고 있다. 서울 지하철역에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얼굴을 담은 영화 포스터가 나붙었다. 시민 수백 명이 “광고 만들라”며 후원금을 보탠 덕분이다. 시내에서 이승만 얼굴을 보자니, 지난 정부가 2019년 임시정부 100년을 기념한다며 정작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만 빼놓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번 주말에 ‘건국 전쟁’을 보려고 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2/02/LBT7JBKVBVCT3EWANPW7ZLO7PY/